제 인생에서 일어난 수많은 나쁜 일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전 중3 때의 일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이 되고 말았지요.
전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아주 어릴 적 제가 기억이 존재하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말이죠. 사실 이 감정은 어떠한 증오와 가까운 것이라 싫다는 말과 확실히 맞닿아 있는 감정이 아니긴 합니다. 이 증오는 끊임없이 뭉쳐지고 응어리져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술, 그건 어찌 보면 이 모든 증오의 시작이자 아버지 그 자체일 수도 있겠지요. 아주 어릴 적엔 술이 다른 사람의 영혼을 가져오는 마법의 물약 같은 건 줄 알았지요.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아주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그건 우리네가 흔히 쓰는 '술만 안 마시면 참 좋은 사람인데 말이야'하는 그따위 것이었습니다.
온 집안을 부수어놓고 심지어 가족들을 폭행하는 쓰레기. 술은 아버지를 망가트리는 것도 모자라 가족을 망쳐놓기에 충분했습니다. 아버지의 끊임없는 폭행과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어머니는 견디기 힘드셨겠지요. 그래서 달빛을 가로등 삼아 멀리 도망치셨겠지요.
전 창문에 얼굴을 조금 내밀고 어머니가 사라져 가는 걸 보고만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깰까 봐 이불을 온몸에 두른 채로요.
전 어머니가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있었습니다. '언젠가 해야지- 할 수 있을 거야'하고 다짐해왔던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칼을 손에 쥐고 아버지의 얼굴 맡에 섰습니다. 당장 칼을 휘두르기만 한다면 죽일 수 있을 겁니다.
전 아직도 후회하곤 합니다. 그때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 게 제 평생 제일 나쁜 일이 되어버리고 말아버린 것을요. 그토록 수많은 나쁜 일이 아버지로 인해 생길 것을 그때 알았다면 죽여버렸을 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