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하루에도 몇 번이고 도망쳐 다녔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어버리고만 싶었다. 불과 같이 뻗쳐오는... 마음속을 천천히 침식시키는... 오늘도 방 안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방 안에서. 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얼굴을 파묻었다. 귓속에는 적막하다 못해 들려오는 이명이 나를 괴롭혔다. 일정한 것처럼, 또는 일정하지 않은 것처럼 그 삐-거리는 이명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간혹 그 이명은 다르게도 들려와서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게 너무나 소름 끼치게 들려와서 머리를 흔들고 귀를 틀어막지만 이명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은 참지 못하고 방구석에 있는 티브이를 켠다. 잠깐 눈을 괴롭히는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지만, 금세 익숙해진다. 아픈 눈을 비비고는 티브이의 볼륨 버튼을 찾아 소리를 키운다. 그러자 귀를 괴롭히던 이명은 억울하다는 듯이 자기도 따라 소리를 올렸다. 이명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할수록 그 이명은 더욱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제야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명이 들려주는 괴상한 말소리에- 굳이 따지자면 말이라기보단 단순한 의미, 느낌이라 해야겠지만... 이명에서 무언가를 전달받았다면 난 이미 미쳐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미친 게 맞을 거다. 아마도.
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천천히 방문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잡는다. 비틀어 당기자 오랫동안 닫혀있던 경첩이 끼익-거리는 소음을 만들어낸다. 이명에 섞여 더욱 기괴한 의미를 나에게 전달한다. 머리를 흔들어 이명을 날려 보내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에는 이명이 전달하는 의미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조용한 거실이 보인다. 내가 문을 열고 나온 일이 놀라운지 부모들이 나를 바라본다. 내가 그들을 노려보자 얼굴을 돌린다. 그래 알아 나도. 당신들이 날 싫어하는걸. 나는 그들에게서 눈을 돌리고 주방으로 향했다. 뒤에서 쏟아지는 눈길이 거북하다.
나조차도 얼마 만에 밖을 나왔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니까... 잠시 그렇게 생각하자, 주방 창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보였다. 시발. 밝네...
창에서 눈을 돌려 도마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식칼을 집어 들었다. 이쯤에 이르자 귓속에서 들려오던 이명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들려오던 소리들은 이명에 묻혀버리고, 머리 속에 울리는 이명 때문에 시야마저 어질어질했다. 비틀거리는 시야에 순식간에 어지러움이 엄습했다. 쿵-하는 느낌과 함께 벽에 몸을 부딪혔다. 그 상태 그대로 기대어 서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아직 그들은 나를 못 봤는지 일그러진 시야 속에서도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꼿꼿하게 앉아서-아니. 움직이는 건가... 잘 모르겠다. 이리저리 흔들린다. 걷고 있는 바닥이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가 쓱-사라진다. 이윽고 난 걸음을 계속 옮겨서 그들의 뒤에 섰다.
그때서야 그들은 다시 날 본 건지 놀란 얼굴로 쳐다본다. 일그러진 시야에 비친 일그러진 얼굴. 끔찍하리만치 이상해야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본래 이들의 원래 표정인 것처럼 자연스럽다. 일그러진 입이 열리며 붉은 혓바닥이 날름 거린다. 왠지 모를 뜨거운 입김이 뺨에 와 닿는 것만 같다. 손을 들어 뺨을 문지르곤 웃었다.
"미안- 안녕"
손을 그대로 휘둘러 목에 칼을 꽂아 넣는다. 이명은 더욱더 커지고- 얼굴에 튀어 오른 핏물은 사방으로 흘러내린다. 옆으로 도망치는 얼굴을 향해서 다시 칼을 휘두른다. 쓰윽-하고 무언가 잘리는 느낌이 들려온다. 다시금 몸을 움직여 확실히 목에 칼을 휘두른다. 핏물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이제야 삐-거리던 이명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내가 칼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몸에 칼을 꽂아 넣을수록 이명은 잦아들었다. 이윽고 이명이 사라지고 났을 때에는 내 주위는 붉게 얼룩져있었다.
하아...
"이제 살겠다..."
이제 이명이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