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죽을 거라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길 바랬다. 그게 눈을 감은 채로 잠든 것과 같은 죽음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 될 터였다. 죽음은 언제나 내 목 밑에서 내 숨통을 조이곤 했다. 턱을 타고 코 끝을 넘실거리는 죽음은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이, 언제나 숨만 간신히 뻐끔거릴 수 있게 숨통을 슬며시 열어주곤 했다. 온몸에 주렁주렁 달린 이 차가운 장치들이 죽음의 물결에서 내 머리칼을 움켜쥐고 간신히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난 언제나 이 차가운 병동 안에서 죽음을 꿈꾸곤 했다. 살기를 바라면서 더욱 오랜 시간 이승에 머물길 바라면서, 그러면서도 아주 초연히 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모든 고통은 배제하고 싶었다.
부지불식간에 날 덮치는 고통은 죽음이란 녀석의 장난질에 불과했다. 언제든 난 그 녀석 안으로 빨려 들어 어둠 속으로 고통밖에 남지 않은 어둠 속에서 저 죽음 밖으로 손 끝 하나라도 뻗어보려 애쓰는 것이다. 죽음은 웃고 있을 터다. 이 병동에서 난 요주의 인물이었다. 비정한 운명 앞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었다. 언제고 죽어 바스러질 몸뚱이, 의사들의 눈은 내 죽음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기적, 그래 그들 눈에는 이만큼이고 살아있는 내가 기적과 다를 바 없었다.
나도 죽고는 싶었다. 휘몰아치는 고통 속에서 내 삶은 더욱 비참한 신세가 될게 뻔함에도 불구하고 난 죽지 못했다. 감정이라곤 하나 없는 이 매정한 줄들은 날 죽지 않게 했다. 나날이 곯아가는 내 몸뚱이가 살아있음은 과학의 산물일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똥밭을 구르는 것과 다를 바 없음에도 난 꾸역꾸역 삶을 하루하루 지내고 있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고 싶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살아있는 이상, 꾸역꾸역 이 하루를 지새워 노을을 바라보고도 싶었다. 죽음이란 녀석에게 무릎 꿇고 빌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