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깨달았다. 그건 오늘 자신이 죽을 거라는 직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확신.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원리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계속되어온 이 예지와 같은 일들은, 불길하게도 높은 확률로 현실이 되어 그녀 앞에 나타났다. 일종의 저주라고나 할까 아니면 신의 저주? 알게 뭐란 말인가. 그녀는 엄습해오는 공포를 억지로 짓눌렀다.
사실 사람의 운명이란 끝이 정해져 있는 게임일지도 몰랐다. 자기 의지로 행하는 모든 것들이 신의 게임판 위에서 차근차근 죽음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 끝은 결국 신의 놀음질에 의해 누군가는 빨리, 또 누군가는 오랜 시간 동안 버티고 버티다 절벽으로 쿵-. 그런 것이리라. 그녀는 오랜 시간 반복되어온 그 직감으로 인해 알 수 있었다. 오늘 자신은 죽는다.
그녀에게 죽음이란 멀리 있지 않은 것이었다. 언제나 삶의 옆에서, 외줄 타기의 벼랑처럼 그녀와 함께해 왔다. 주위의 누군가가 죽는 것은 그녀에게 아무런 감흥을 불러오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부모가 죽었을 때도, 또 자신의 아이가 죽었을 때도. 그녀는 그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삶은 죽음과 맞닿아 있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든 죽음은 삶으로 삶은 죽음으로 뒤집히는 것이다. 사람의 운명이란 바람에 흩날리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상황에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직감에서 일어난 공포란 어디서 일어나는 것일까. 죽음, 공포, 삶의 마지막. 그녀는 발바닥을 간질이는 공포가 어느새 온몸을 덮친 걸 느끼고 있었다.
붉은 피가 쏟아질 것이다. 머리 위로 쏟아진 붉은 피는 머리칼을 타고 흘러내려 눈 위로, 콧방울을 타고 흘러 턱으로, 그리고 목을 타고 가슴을 적실 것이다. 배를 지나 허벅지를 적신 붉은 피는 땅으로 떨어져 찌걱 거리는 피의 연못을 만들 것이다. 그녀는 처음 느껴보는 죽음의 공포란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것은 다른 이들을 통해서는 느낄 수 없는 삶에 대한 욕망. 불타오르는 뜨거운 열망.
살고자 하는 의지!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생전 처음으로 삶을 향한 욕망을 느꼈다. 복부를 간질이는 그 열망은 입을 통해 터져 나왔다. 살고 싶다. 절실히 살고 싶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직감을 되짚어 죽음의 흔적을 찾았다. 피, 머리칼을 적시는 그 피! 밖은 위험하다. 그녀는 집안에 틀어박혀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째깍째깍-.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한 시간, 그리고 두 시간. 그녀의 시간은 천천히 자정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이윽고 열두 시. 댕댕-하는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치밀어 오르는 살고자 했던 열망은 눈물로 터져 나왔다.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댕댕-.
뻐걱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머리 위로 지붕이 부서져 내렸다. 피, 붉은 피. 그녀의 머리칼이 붉게 물들었다. 댕댕-하는 소리가 또 이어졌다. 아직 시곗바늘은 열두 시에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