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작은 피노키오의 꿈이었어요. 사람이 되는 것. 거칠은 나뭇결의 몸이 아닌 부드러운 피부를 갖는 것.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관절이 아닌 부드러운 움직임의 관절을 갖는 것. 거짓말을 할 때마다 늘어나는 코가 아닌, 늘어나지 않는 코를 갖는 것. 단지 그것뿐이었어요. 처음 생각을 하고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꿈꿔왔던 일. 사람이 되어서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것. 제페토 할아버지의 진짜 손주가 되고 싶다는 것.

하지만 꿈은 언제나 꿈일 뿐이었죠. 이루어질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날이 갈수록 삶에 희망이 없어지고. 잔뜩 해왔던 재밌던 일도 이제는 슬슬 질려가고 있었어요.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자신의 피부결을 대패로 밀며 생각했어요. 내가 사람이 될 방법만 있다면, 그 어떤 힘든 일도 해낼 수 있을 텐데.

그때였어요. 펑-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땅딸막한 요정이 나타났어요. 요정은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을 애써 정리하고는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요리조리 흔들었어요. 요술봉 끝에서 보라색 불빛이 이리저리 글씨를 만들었어요. 요정은 잠시 에헴-하는 작은 헛기침을 하고는 피노키오의 코 앞으로 쑤욱- 다가왔어요. 그리고는 수염에 가리어진 입을 씨익-. 금 색깔 이빨이 드문드문 밝은 빛을 발했어요. 피노키오는 갑작스레 앞에 나타난 요정에 잠시 몸을 움츠렸어요. 자신의 몸을 대패로 밀고 있는 건 그 누구라고 해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심지어 자신을 만들어주신 제페토 할아버지조차도. 피노키오는 손에 들고 있던 대패를 뒤로 슬쩍 감추고는 다른 손으로는 요정을 살짝 밀쳐내었어요. 요정은 등에 달린 작은 날개로 뒤로 쓰윽-날아올라 다시금 요술봉을 흔들었어요. 땅딸보 요정은 다시 한번 에헴-. 작은 헛기침을 하곤 옆구리에 손을 올리고 요술봉을 뻗어 피노키오를 가르켰어요.

"너 말이야,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땅딸보 요정의 말에 피노키오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어요. 이 땅딸보 요정에겐 말을 쉽사리 할 수 없었어요. 왠지 어려웠어요. 턱끝까지 차오른 말을 애써 삼켰어요.

"내가 말이야, 단순한 나무인형한테 말이야, 응? 그니까, 응. 내가 움직이게도 해주고 말이야, 이렇게 착하게 살라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이야, 응. 거짓말할 때마다 코도 늘어나게 하고 말이야. 응? 그렇게 해줬는데 말이야. 응? 욕심이 너무 지나치면 안되는거야! 알아 응? 욕심도 적당히 부려야지 말이야"

"... 그래도...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말이야! 응! 니 놈이 하는 생각이 계속 귓가를 웅웅- 울 린단 말이야! 얼마나 신경 쓰이는 줄 알아!?"

"전 그냥 사람이 되고 싶어요. 피부를 갖고 싶어요.... 늘어나는 코 같은 거 필요 없어요. 매일 이렇게 대패질하는 것도 지쳤어요"

"이게... 아고... 내가 진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 자고 말이야. 착하게 살겠다고... 하이고-"

땅딸보 요정은 한숨을 계속 내쉬었어요. 한참을 그렇게 요술봉을 이리저리 흔들던 땅딸보 요정은 생각을 정리한 건지, 여태껏 흔들고 있던 요술봉을 손에 탁탁 내려쳤어요. 그리곤 씩-다시 그 웃음을 지었어요.

"진짜 사람이 되고 싶냐?"

"예, 되고 싶어요"

"그러면 말이야-"

이후로 땅딸보 요정은 피노키오에게 한참을 이야기하였어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요. 땅딸보 요정을 말을 들을수록 피노키오는 마음속에 담고 잇던 자신의 꿈이 꿈틀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드디어 될 수 있어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한참을 되뇌었어요. 잊어먹지 않으려고 조그마한 조각칼을 들어 자신의 팔에 방법을 새겨 넣기 시작했어요.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 사람이 되려면 바다도 건너고 산도 넘어야 하고 많은 어려움이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되고 싶었어요. 피노키오는 생각했어요. 사람이 된다면 제페토 할아버지와 같이 목욕을 하자고. 제페토 할아버지의 진짜 손주가 되자. 제페토 할아버지를 꽉 끌어안고.

여행을 떠난 피노키오는 산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는 와중에, 작은 여우를 만났답니다. 작은 여우는 큰 눈을 똘망똘망 거리며 피노키오의 다리에 자신의 몸을 비비었어요. 피노키오는 몸을 숙여 작은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답니다. 그러자 작은 여우가 깽깽-거리는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었어요.

"나무인형아. 넌 혼자 어딜 가니?"

피노키오는 너무나 놀랐답니다. 여우가 말을 하다니요!? 하지만 곧 마음을 추스르고는 자신에게 말을 건 여우를 바라보았어요. 여우는 고개를 갸우뚱.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여행 중이란다"

"사람이 되기 위해서?"

피노키오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작은 여우는 피노키오의 행동을 보고 잠시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어요. 며칠 전 보았던 놀라운 광경에 대해서 말이죠.

"혹시... 그 방법을 내가 알지도 몰라"

"응!? 어떻게!? 진짜!?"

"응. 거기서는 사자가 사람으로 바뀌고, 다시 사람이 사자로 바뀌기도 해. 곰이 사람처럼 걸어 다니기도 하고, 사람들의 몸이 조각조각 찢기기도 하지만, 반대로 붙기도 하지. 그곳이라면 네가 사람이 되는 방법도 알 수 있을 거야! 분명히! 서커스단으로 가자! 서커스단이야!"

작은 여우의 말에 피노키오는 들떴어요. 사람이 될 수 있다니! 피노키오는 땅딸보 요정이 했던 말을 다시금 떠올리기 위해 팔을 바라보았어요. 하지만 흐릿해진 팔에는 '···으로 가라'라는 말만 쓰여있다. 뭐였지? 잠시 고개를 갸웃. 옆에서 작은 여우가 계속 '서커스단으로 가자!'라고 외치는 것을 들었어요. 그래- 거긴 가보다. 피노키오는 작은 여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뒤를 쫓아가기 시작하였어요

두 명의 사람이 아닌 것들은 금세 서커스단에 도착했어요. 곧이어 피노키오를 본 단장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뛰쳐나왔답니다. 허리에 찬 벨트 위로 두툼한 뱃살이 출렁 튀어나왔어요. 단장은 피노키오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며 씩-웃었어요. 금이빨이 반짝. 피노키오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뒤로 빼내었어요.

"좋-아. 사람이 되는 방법 말이지? 크하하. 좋아. 알려주지. 알려주고말고"

단장의 말에 피노키오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어요. 자기도 모르게 단장의 손을 움켜쥐었어요. 방금 전까지 그렇게 껄끄러웠던 상대였는데 말이에요. 단장은 피노키오의 손을 조심스레 떨쳐낸 후 검지 손가락을 펼쳐 들고 피노키오의 앞으로 내밀었어요.

"단. 여기서 일 년간 일을 해야 해. 너에겐 중간의 작은 막을 맡기지. 그렇게 한다면 일 년 뒤에 너에게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주겠어"

"좋아요! 할게요! 하겠어요!"

피노키오는 잠시도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어요. 단장이 적어준 계약서에 사인을 하였어요. 잠시 지나자 어떤 말이 쓰여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일 년만 지나면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사람이. 피노키오는 자신의 꿈이 눈 앞에 성큼 다가온 것만 같아 너무나 기뻤어요.

그 계약을 한 일 년 뒤, 피노키오에겐 많은 일이 있었어요. 드디어 계약이 만료되고, 사람이 되는 법을 듣는 날, 피노키오는 어두운 골방에 웅크리고 앉아 움이지 않았어요.

수많은 일이 있었어요. 서커스단의 중간 막을 맡은 피노키오는, 뒤에 있을 공연들을 위해서 분위기를 띄워야 했어요. 처음엔 거짓말을 했어요. 코가 늘어나고 관객들은 즐거워했어요. 하지만 그건 얼마 가지 않았어요.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해서 늘어난 코를 잘랐어요. 텅-하며 잘려나가는 코를 보며 사람들이 즐거워했어요. 시간이 지나고, 피노키오는 팔을 자르고 다리를 자르고 코에 불을 붙였어요.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부숴나갔어요. 하나하나. 피노키오는 자신의 몸이 부서져 나갈 때마다 웃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어요. 코가 잘려나가자 자지러지게 웃는 여자부터, 팔을 타고 올라오는 불꽃을 보며 박장대소하는 남자. 다리가 꺾이자 비웃는 아이들, 늘어난 코를 지팡이로 써야겠다며 잘라가는 노인들.

피노키오는 만신창이가 되어 어두운 골방에 앉아있어요. 그을린 팔다리, 몇 번이고 갈아 끼운 몸뚱이. 피노키오가 움직이지 않고 한참을 그렇게 있을 때, 단장이 두툼한 뱃살을 흔들며 나타났어요. 금이빨이 씨익-.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요.

"피노키오? 어때. 사회 구경은 잘했나? 내가 말이야-응? 힘 좀 썼지, 응."

단장은 요술봉을 흔들면서 그렇게 말했어요. 땅딸보 단장은 요술봉으로 힘껏 피노키오의 머리를 내려쳤어요. 피노키오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올리고는 피노키오에게 물었어요.

"어때, 피노키오. 아직도 사람이 되고 싶나?"

피노키오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자신을 바라보던 관객들의 웃음이 떠올라요.

"예. 되고 싶어요"

피노키오의 코가 쭈욱-. 늘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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