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판은 시작됬다. 우리는 국경을 넘으려 했다. 우리를 옥죄는 자유로부터 뛰어넘을 그 순간이다. 짓누르는 어둠을 친구 삼아 걸음을 옮긴다. 진창이 되어버린 땅과 우거진 풀들이 우리의 도주를 방해하듯 발목을 잡아끌었다. 땅으로 손을 내민 버드나무 가지가 우리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아가야 했다. 한 손에 쥔 칼의 예기가 서늘하게 우리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우리 사이에는, 우리의 어둠 사이에는 깊은 숨 소리만 메워져 있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충격과 소음에도 깨어져버릴 것만 같은, 우리의 신경을 갉아먹는 침묵이었다. 사각거리며 우리의 지금을 갉아먹는 것만 같은.

온갖 환상과도 같은 방해를 무너트리며 우리는 국경에 다다랐다. 길을 나설 때만 해도 우리를 피해 어둠만 비추던 달빛은 찬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마른침을 삼켰다. 아마 저 황홀하고도 찬란한 달빛은 우리를 놔주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우리는 몸을 숙여 땅에 찰싹 달라붙었다. 너무나 밝다, 우리가 찾는 자유처럼, 우리를 옥죄는 자유를 향해 너무나 밝은 빛을 뿌려대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의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위험했다. 서로 손을 맞대고 서로의 죽음을 응원하던 그 순간으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서로의 죽음을 담보하기로 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진창을 박차고 일어나 뛰었다. 저 달빛이 너무나 밝다. 내 왼편을 달리던 녀석이 땅을 나뒹군다. 오른편의 녀석은 무엇을 밟았는지 몸뚱이가 하늘을 향해 튀어올랐다. 아직 걸음을 옮길 수 있는 녀석들은 멈추지 않았다. 국경을 향해, 저 눈앞에 보이는 철조망을 향해. 저 멀리 소리를 내지르며 뛰던 녀석의 머리가 터져나간다. 그 옆의 녀석은 부수어진 다리를 땅에 끌며 자유를 향해 몸을 굴린다.

아, 우리의 자유가, 우리를 옥죄는 자유가, 우리를 비추는 달빛이, 저 찬란히 빛나던 달빛이.

나를 향해 쏟아진다. 빛은 내 몸을 감싼다. 난 우리를 가로막은 국경을 눈앞에 두고, 우리를 옥죄는 자유를 두고 더 나아갈 수 없었다.

'끄적끄적-. > 불편한 이야기-네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도.  (0) 2018.06.07
빗소리.  (0) 2018.06.07
시간.  (0) 2018.06.07
냉장고.  (0) 2018.06.07
후유증.  (0) 2018.06.07
Posted by Ral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