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죽게 해줘요 엄마..."

그녀는 아들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산소호흡기로 인해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말을 꺼낸 아이의 말이 심장을 찌르는 듯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소리가 병실에 가득 메워진다. 그녀는 아들에게 고개를 흔들곤 머리를 쓰다듬었다. 독하디 독한 약으로 인해 맨들 머리가 된 아이의 피부는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것만 같았다. 푸석한 진흙더미를 만지는 듯한 기분에 그녀는 눈물이 흘러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아이의 이마에 키스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잠깐 사이에 아이는 생명이 끊어진 것처럼 잠이 들었다. 간혈적으로 들려오는 아주 작은 쌕쌕 소리만이 아이가 살아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선채로 한참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아이의 고통을 계속해서 연장하는 것이 누구에게 좋은 것일까. 그녀는 지난한 몇 년간의 간병생활에 지쳐있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머리를 가득 메운 하나의 상념을 잊을 수 없어 크나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입 밖으로 차마 내기도 어려운 그 생각이 잠을 설치게 했다. 점점 심해져만가는 수면장애는 결국 불면증으로 이어졌고, 그녀 또한 나날이 심약해져 갔다. 사실 굳이 따지고 보자면 이날도 그녀에게 있어서는 오랜 간병생활의 하루일 뿐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언제나 아이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일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아이의 말이 마치 명령처럼, 혹은 아이의 간절한 소망처럼 마음을 옥죄어왔다. 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랜 투병으로 인해 아이의 얼굴은 여기저기 상해있었다. 약에 취해 잠에 들었음에도 고통스러운 표정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아이의 몸을 여기저기 찌르고 있는 선들이 아이를 속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유로워 지기를 바라는, 고통 없는 세상을 바라는 아이를 자신의 이기심으로 붙잡아두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아이의 몸 위로 올라탔다. 침대의 흔들림에 아이가 슬며시 눈을 떴다. 아이는 마치 선물을 받은 것처럼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베개를 집어 들었다. 아이는 마치 선물을 보채는 아이처럼 그녀에게 말없이 재촉했다. 어서요, 빨리요-. 그녀는 베개로 아이의 얼굴을 짓눌렀다. 베개 위로 보이는 눈이 그녀를 향해 깜빡인다. 고마워요, 엄마. 그녀는 환청처럼 들리는 그 소리에 베개를 더욱 세게 짓눌렀다. 아주 미약한 힘도 내기 힘든 아이는 잠시 잠깐 손발을 버둥거리다 이내 축 쳐졌다. 그녀는 아이가 움직임을 멈추고, 병실에 가득 시끄러운 소리가 채워졌음에도 아이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웃고 있는 아이의 눈에 흐른 눈물을 손끝으로 닦아냈다. 그리곤 아이의 이마에 키스했다.

"잘 자렴, 우리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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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