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그랬습니다."
"후우-"
노려보던걸 멈춘다. 내가 노려본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이미 사람을 죽여버린 녀석이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녀석을 죽여버릴 수도 없는 일이고, 그 녀석에게 무슨 사과를 받아낼 이유도 없다. 나는 그저 말 잘 듣는 로봇처럼, 혹은 마음이 없어져버린 사이코패스처럼,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감정을 억누르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말자. 이미 죽어버린 사람을, 시체를, 고깃덩어리를 의식하지 말자. 감정의 찌꺼기는 뇌 속 한 공간에 묻어두자. 묵직한 이성 덩어리로 감정을 억눌러 흘러나오지 않게. 그렇게 맘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시금 바라본 사건 현장, 붉은 바닥. 흘러내리는 붉은 핏방울. 떨어지는 핏방울 속 걸려있는 고깃덩이. 혹은 사람이었던 그것. 푸줏간을 연상시키는 붉은 불빛. 사람마저 붉게 변해 보이는 그런 공간이다. 아무도 말이 없다. 모든 사람들은 이 상황에 뭐라 말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는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할 일을 깨달은 막내가 녀석의 손목을 잡아끈다. 찰칵-거리는 소리, 질척 거리는 발소리. 막내와 녀석이 사라졌다.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붉은 공간에서 홀로 검게 물들어 있는 기분이었다. 붉게 변한 물이 채워진 욕조에 다가간다. 이젠 익숙해져 버린 비릿한 냄새. 욕조 속에서 손이라도 뻗어 나올 것만 같다.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식은땀이 흐르는 손을 바지에 쓱쓱 문질러 닦았다. 몸을 숙여 땅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머리카락 한올을 집어 들었다.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 끝, 그 끝 부분에 거칠게 뜯겨 나간 피부 조각이 들러붙어있다.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눈을 돌릴 수도 없다. 끝까지 보고 파악하고 분석 해내야한다. 냉철해져야 한다. 하지만... 갈수록 그러기가 힘들다. 바지 주머니에서 증거품 수집용 비닐백을 꺼내어 넣는다. 피부 조각이 붙은 머리카락이 휑한 비닐봉지에 담긴다.
못 해 먹겠다. 속이 메슥거린다. 나는 대충 둘러보다가 방을 나왔다. 잠깐 머리라도 식히자. 더 보고 있자니 묵직한 이성 덩어리가 쩌적 소리를 내며 금이 가고만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이성을 짖눌러 보아도 난 사람이다. 그들과 똑같지 않은. 매달, 혹은 매주, 그것도 지나치면 매일. 나는 지옥과 일상을 오가고 있다. 흔히 악마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과 매일 마주치고 그들의 말을 듣고, 일반인들이 오열하는 걸 견뎌야 한다. 맨 정신으로. 술의 힘을 빌릴 수도 없이. 그들과 매일 마주하며 매시간 환희와 거짓에 찬 목소리와 그들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피 흘리는 오열을 들어야 한다. 그들의 어디부터가 거짓이고 진실인지, 그들의 말 틈 어딘가에 빈틈이 없는지 찾아야 한다. 눈물 흘리는 피해자들과 마주하며. 피해가족의 오열과 절규를 악마 놈들의 거짓과 진실처럼 냉정하게 받아야 한다. 익숙해지면 안 된다. 나약해지면 안 된다. 흐트러지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냉철해야 한다. 하지만 난 사람이다. 난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일 이런 것들과 마주하며 살아온 내 선배들이 존경스럽다. 지금의 난 하루하루 깨어져 가고 있는데...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붉은 그곳으로 들어간다. 검은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만 같은 그곳으로 선뜻 발을 내밀기가 힘들다. 수많은 생각이 교차된다. 아까 봤던 그 붉은 공간이 다시 눈 앞에 펼쳐진다. 매달려있던 시체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듯이 움직거린다. 욕조에 담긴 붉은 물에서 손들이 뛰쳐나온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수많은 고깃덩어리가 하나가 되어 일어선다. 눈을 질끈 감는다. 어둠에 감싸여 모든 환상이 사라진다. 잠시 숨을 고른다. 거칠어진 숨소리, 심장이 달음박친다.
"에이 씨발"
재킷 안주머니에 들어있던 사표를 꺼내 땅에 아무렇게나 내던진다. 휴대폰 배터리를 뽑아 꺼버린다. 어디 사람 없는 곳으로 가버리자. 일상으로, 지옥과 마주칠 일이 없는 곳으로.
"씨이발..."
...
....
.....
......
다시 사표를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