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만에 시골로 내려가는지 가물가물하다. 머릿속이 백지가 된 것처럼 터덜터덜 힘없이 걸어가,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수많은 곡소리들 속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웃음소리. 조문을 하기 전 걸쳐 입었던 양복을 바로 하고 들어선다. 녀석은 어디로 가버리고 낯선 얼굴의 사내가 상주를 보고 있다. 상주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나는 타오르는 향 앞에서 가만히 서서 영정사진을 바라본다. 남의 손주인 나를 항상 친손주처럼 챙겨주셨던 할머니. 사진 속 할머니는 입꼬리가 어색하게 올라간 그런 웃음을 짓고 계셨다. 언제나 사진을 찍을 때면 짓던 그런 미소. 사진 찍는 게 어색하고 싫다면서 짓던 그런 미소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향 하나에 불을 붙여 향로에 꽂는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연기가 솟아오르고. 할머니께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접객실로 들어서서 창이 사려진 자리에 아무렇게나 주저앉는다. 소주 한 병을 끌어당겨 잔에 따른다.

소주가 쓰다.

"어우-형 오셨네요"

사실 상주를 해야 하는 새끼는 이 새끼인데. 어디서 놀다 왔는지 처자다 왔는지, 머리가 아무렇게나 뻗쳐있다. 내가 손을 올려 내 머리를 쓸어내리는 시늉을 하자, 녀석이 대충 자신의 머리를 쓸어내린다. 아무 말하지 않았음에도 녀석은 내 앞에 앉아서, 잔 하나를 꺼내 소주를 따른다. 그리고는 싱글싱글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역겨운 술냄새가 여기까지 풍겨온다.

"오늘 못 오실 줄 알았어요"

"언제 돌아가셨어?"

어떻게 안 올 수가 있어, 이 개새끼야. 나는 튀어나오려는 말을 억눌렀다. 할머니는 항상 이 빌어먹을 새끼가 쳐놓은 사고를 수습하려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항상 무릎이 아프시다고 하셨으면서도 열심히 일하셨다. 내가 돈을 부쳐주며 쉬라고 하실 때에도 쉬지 않으셨다. 내가 준 돈은 모두 이 새끼의 술 쳐 먹는 돈으로 들어갔겠지. 녀석이 소주 한잔을 들이키며 '캬~이맛이야'라고 중얼거린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인다. 빨간 불이 눈앞에서 연기를 내뿜는다. 나는 녀석의 입에 있던 담배를 빼앗아 물었다. 녀석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문다.

"언제 돌아가셨냐고"

"아-. 글쎄요. 듣기로는 10시쯤에?"

시발 새끼. 듣기로는?

"임종은?"

"삼촌이 봤다고 하더라고요."

"삼촌만 본거야?"

"예. 뭐-"

"넌?"

"아... 전..."

녀석이 말을 얼버무린다. 나는 비어버린 잔에 소주를 따르고 다시 입에 털어 넣는다. 소주의 끝 맛이 더욱 쓰다. 나는 알싸하게 오르는 술기운을 느끼며 담배를 쭉 빨아 당긴다. 머리가 핑- 어지럽다. 녀석은 또 그 싱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친구들에게 문자를 날린다. 전혀 슬퍼하는 기색이 없는 그런 행동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은 일어서서 상주 노릇을 하러 가지 않는다. 씨펄놈이. 할머니 가는 길을 배웅할 생각은 못하고. 이 개새끼가 이렇게 여기 앉아서 담배나 빨고 술이나 마시고 있다. 할머니가 그렇게 자기를 예뻐해 줬는데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다. 모른다 시펄놈이.

"편히 가셨대?"

"주무시듯 가셨대요. 호상이죠 뭐"

뭐? 호상? 소주잔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소주잔을 당장이라도 녀석의 얼굴에 던져버리고 싶지만 애써 참는다. 소주를 병째로 들어 입안에 들이붓는다. 녀석이 '형-아우... 왜 그래요. 천천히 마셔요'라며 나를 만류한다. 시팔새꺄 너 때문에 이렇게 먹는 거다 개새꺄. 욕이 터져 나온다. 소주병을 거칠게 탁자에 내려놓는다. 눈앞이 빙글빙글 돈다. 빙글빙글 녀석의 얼굴이 웃고 있다.

"시팔새꺄. 사람 뒈지는 거에 호상이 어딨어 호상이"

"형-! 왜 그래요. 아오... 진정해요"

"미친 새끼가 호상? 시펄놈아 호상? 시발 넌 뒈지는 거에도 잘 죽는 게 있냐 이 개새꺄! 시발 새끼가 호상? 시펄. 주둥이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냐? 십새끼가. 진짜... 너 할머니 돌아가실 때도 나이트에서 부킹이나 쳐하고 있었지 개새꺄! 응!? 시펄놈이. 진짜..."

"아 형!! 좀..."

"개새끼가! 어디서 소릴 질러 씨벌놈아!!!"

시펄. 소주잔을 녀석의 얼굴에 던져주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몇몇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무시하고 밖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을 나오자 찬 바람이 몰아닥친다. 후끈 달아올랐던 얼굴이 조금 식는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깊숙이 빨아들인다. 가슴이 먹먹하다. 답답하다.

"시팔... 사람이 뒈지는데 호상이 어딨어 호상이. 시펄놈의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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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