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서 폭발음이 들린다. 우현은 철모를 깊게 눌러쓰고 참호 안에서 몸을 웅크렸다. 후드득-하는 빗방울 소리가 철모를 때린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시야가 흐리다. 저 멀리서 「죽어 이 개시키들아!!!」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지만, 곧 폭발음에 사라진다. 우현은 자신의 옆에 몸을 숙이고 조용히 앉아있는 이석우 상병을 바라봤다. 아무런 표정 없이 주머니에서 잔뜩 불은 육포 조각을 꺼내 입에 털어놓고 있다.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손을 들어 육포를 건네는 시늉을 한다. 우현이 고개를 가로젓자, 석우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남은 육포를 입에 다 털어 넣는다.

"먹어야 사는겨 인마-"

"많이 드십쇼"

석우는 피식 웃는다. 철모를 꾹 눌러쓰고 주변을 살핀다. 폭발음이 멈춘 걸 보니 주변의 아군은 전멸- 혹은 은엄폐. 죽지만 않았으면 좋을 텐데. 우현은 가능성 낮은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석우는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줄 알고 있었다. 방금 전 목소리-.

아마 김하사 목소리였을 거다.

이빨이 몇 개 깨져서 발음이 새는 김하사, 그놈의 개시키하는 발음이 귀에 맴돈다. 빌어먹을 폭음 속에서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때부터 속이 너무 허했다. 배고프다. 주변을 살피면서도 주머니에 다른 먹을 게 없나 뒤적거렸다. 시펄-없구먼? 가벼운 욕지기를 내뱉고는 참호를 기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변에 떨어진 주인모를 군장을 뒤적거린다. 곧 손에 건빵 하나가 들려 나왔다.

"에이씨 또 건빵이고"

그러면서도 봉지를 뜯어 입안에 털어 넣는다. 와그작와그작 하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힌다.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건빵을 씹어 삼킨다. 아마 여기서 살아 돌아가긴 힘들 거다. 빌어먹을, 개죽음이네.

"우현아-"

"예"

"넌 꼭 살어~"

"예"

한동안 석우는 말없이 건빵만 씹었다. 봉지 속의 건빵이 비에 젖어 뭉개질 때쯤 되어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얼굴엔 왠지 모를 비장감마저 느껴졌다. 철모를 눌러쓰고는 잔뜩 움츠린 우현의 철모를 후려쳤다. 딱-하는 소리에 우현이 석우를 노려본다.

"뭔 짓입니까. 소리가 들리면..."

"가자-. 여서 죽든 저서 죽든 넌 살릴꺼니께"

석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하늘을 향해 소총을 한발. 타아앙-하는 소리가 사방을 울린다. 다시금 알 수 없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석우는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반대로 뛰그라!!"

우현은 움직이지도, 그렇다고 말리지도 못한 채 멀어지는 석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빗속에서 다시 한번-.

"뛰그라 개자식아!!!"

석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현은 몸을 돌려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콰앙-하는 소리가 산발적으로 들려온다. 땅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몸의 균형을 채 바로잡기도 전에 땅을 뒹군다. 철모가 코를 때리고는 바닥을 뒹군다. 왈칵-하고 피가 쏟아진다.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몸을 일으킨다. 흙을 뒤집어쓴 철모를 다시 눌러쓴다. 죽을 수 없다. 여기서 죽을 수 없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죽어서는 안 된다. 다리를 움직여. 뛰어. 귀를 때리는 폭발 소리에도 선명하게 말소리가 파고들었다.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자. 여서 죽든 저서 죽든 너는 살릴꺼니께]

[먹어야 사는겨-]

'끄적끄적-. > 불편한 이야기-다섯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닮은.  (0) 2018.07.27
수집.  (0) 2018.07.27
작별 인사.  (0) 2018.07.26
자극.  (0) 2018.07.26
고백.  (0) 2018.07.26
Posted by Ral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