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두운 방에 들어섰다. 빛 한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손에 들고 있던 후레시 주위만이 그의 시야가 되었다. 터벅하는 발소리에 후레시 주위로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는 터져 나오려는 기침을 애써 참아냈다. 폐 속에서 나오지 못한 먼지는 고통이 되어 그의 목을 긁었다. 숨을 애써 고르고 다시 발을 옮겼다.

오래된 선반. 먼지가 수북이 앉은 탁상시계. 물 대신 먼지가 담긴 물 잔. 언제 찍은 사진인지 모를 가족사진. 모든 것이 지나간 시간 속에 먼지에 파묻혔다. 그는 바닥의 먼지가 비산 하지 않게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뒤틀리고 갈라져버린 나무 바닥이 끽-하는 거친 파열음을 만들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린 채 탁상시계를 집어 들었다. 먼지를 털어냈다. 11시 48분, 시간은 아직 그때 그날에 멈춰있었다.

그는 잊을 수 없었다. 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그를 거친 감정의 격류에 밀어 넣곤 했다. 그는 시계를 내려놓고는 사진으로 손을 뻗었다. 이미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사진, 그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땀방울이 이마에 맺혔다 턱을 타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떨리는 손에 힘을 주어 사진을 들어 먼지를 닦아냈다. 아- 그래, 이 소녀였구나. 그는 사진 속 작은 소녀를 바라보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거친 빗소리, 몰아채는 바람, 저 멀리서 들려오던 총소리. 그는 그 날로 되돌아갔다. 탕-하는 소리에 옆에 있던 나무가 터져나간다. 숨을 제대로 내쉴 틈 없이 땅을 뒹굴었다. 돌과 나무들이 온몸을 두들기는 것 같았다. 공기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폐가 없어질 것만 같다. 근육은 고통을 내질렀다. 그는 그래도 몸을 움직였다. 살고 싶었다. 죽을 수 없었다. 몸을 되는대로 굴려 가시나무 수풀을 지났다.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이 곳이 나타났다. 지금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만 같은 오래된 나무집, 그는 집으로 들어섰다.

그는 소녀의 사진에서 눈을 돌려 그때의 자신을 쫓았다. 자신은 긴장했으며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총을 들어 방 한쪽으로 향했다. 오지 마, 오면 안 돼. 오지 마. 그는 소리쳤으나 기억 속의 자신은 천천히 이쪽을 향했다. 그리고 끼익-. 방 한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는 총을 돌려 갈겼다. 나무 벽이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비가 멎었다. 그리고 광기에 휩싸인 것만 같았던 그의 총질도 멈추었다. 그는 침을 삼키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엔 소녀가 쓰러져있다. 머리가 박살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소녀가, 뼛조각이 바닥에 굴러다닌다. 피가 바닥을 타고 점점 퍼져간다.

안돼, 안돼. 그는 기억 속의 자신에게 소리쳤다. 안돼 안돼... 얼굴을 알아볼 수 없던 소녀의 얼굴이 보인다. 지난 십여 년간 머릿속을 헤집던 얼굴 없는 소녀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소녀를 보며 계속해서 되뇌었다. 미안해, 미안해. 난 무서웠어. 미안해, 미안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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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