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기운이 없어진 너를 보고 있노라면 시간은 참 야속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와 지낸 지 십여 년의 시간 동안 넌 그저 나에게 사랑을 주기에 바빴다. 난 너의 머리를 쓰다듬고 너의 눈을 바라보았다. 조금씩 총기가 사라지는 네가, 이제 곧 나를 못 알아볼 것만 같아 두려웠다.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게 쓰라린 고통이었다. 나는 너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넌 지난한 고통을 견디고 있겠지. 너와 나의 시간이 다름에, 기필코 올 수밖에 없던 이별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푸석해진 털과 힘없이 흔드는 꼬리가 너와의 이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너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나를 보는 너의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넌 언제나 첫 만남 속에서 한없이 뛰어놀던 작은 아기 같았다. 너에게 고통을 참아내고 조금만 더 살아달라는 부탁을 하는 건, 그저 나의 이기심일 것이다. 텅 빈 집안을 바라보고 있는 고통을 견뎌야 할 내가 무서운, 그런 이기심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이기적인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다. 단 일 년이라도, 한 달이라도, 하루라도. 아니면 단 몇 시간만이라도 너의 눈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난 이기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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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