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밤하늘을 이불 삼아 모닥불에 둘러앉았다. 각자 내어놓는 얘기는 시시껄렁한 사담이었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안도하고 있었다. 이런 얘기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해어지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중 한 녀석이 입을 열었다. 조금은 멀리 지금은 없어진 고향 얘기.
"제 고향은 완전 시골이라서요. 전기도 안 들어오고 그랬어요. 그때도 친구들이랑 이렇게 모닥불 피워놓고..."
그렇게 시작한 녀석은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던 표정 속에서 눈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녀석은 말을 할수록 점점 그곳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녀석이 말을 끝내고 잠시 우리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 시간이 흘렀다. 밤하늘이 무겁게 몸을 눌렀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던 모닥불이 서서히 불빛을 사그라트렸다.
우리 사이에 어둠이 가득 찼다. 말을 꺼냇던 녀석은 이윽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모닥불이 희망의 봉화였던 마냥. 녀석의 흐느낌은 쉽사리 전염되어서 모두들 고개를 무릎에 처박고 고통을 쏟아냈다. 다들 그렇게 참고 있던 불안을 어둠에 쏟아내었다. 어둠 속에서 서로 속에서 표정을 숨기고 소리를 숨긴 채 감정만이 요동쳤다.
난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옮겼다. 몇 개비 남지 않았던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담배 끝의 빨간 불빛이 뻑뻑 점멸한다. 세상이 멸망했다고 말한 날로부터 3개월, 우리들은 각자의 고통을 이겨내야 했다. 하지만 분명히 다들 지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