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

의사의 말에 사내는 고개를 떨궜다. 그는 연신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고 다리를 떨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던 눈에선 결국 눈물이 맺혔다. 사내는 결정할 수 없었다. 단어가, 글자가 말이 되지 못한 채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생각들 틈으로도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의사는 초조했다. 결정이 늦어질수록 확률은 떨어질 것이다. 의사도 사람이었기에 쉽사리 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게 의사의 심장을 짓눌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말을 해야 했다. 최소한 보호자의 작은 죄책감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보호자의 결정에 등을 떠밀어주기라도 해야 했다. 그게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우선순위를 고려하셔야 합니다"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이미 눈물로 뒤덮였다. 헝클어진 머리가 이리저리 삐쳐있다. 사내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흐느낀 탓에 꺽꺽 거리는 쇳소리가 먼저 터져 나왔다. 사내는 간신히 말을 꺼내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는 연신 몸을 들썩였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내의 결정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기 때문에 위로의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사내는 힘든 결정을 내렸다. 결혼한 지 십 년 만에 생긴 아이와 평생 사랑할 부인, 그리고 지금의 상황. 사내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부인이 얼마나 간절히 아이를 원했었는지 알면서도 결정을 해야만 했다. 사내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이제 곧 사그라질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사내는 듣지 못한 아이의 울음소리를 평생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끄적끄적-. > 불편한 이야기-두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심.  (0) 2018.06.06
고여있다.  (0) 2018.06.06
심연.  (0) 2018.06.06
보다.  (0) 2018.06.06
각자.  (0) 2018.06.06
Posted by Ral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