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갠 다음 날, 집 앞에 고여있는 물웅덩이를 보곤 합니다. 흙과 뒤섞여 적당히 갈색빛을 띠는 구정물은 아지랑이를 피워내듯 이리저리 흙을 일렁거립니다. 그건 마치 살아있는 생명과도 같아서 이리저리 섞이고 흩어지고 뭉쳤다가 부서지곤 합니다. 침전물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해 맑은 물이 상층으로 올라오고 나면 바닥은 한없이 고요해집니다. 그리고 마치 다른 세상으로 연결해주는 터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가라앉은 흙을 뚫고 들어간다면 다른 세상이 확 펼쳐질 것만 같다고도 생각합니다. 나니야 연대기의 옷장이나 해리포터의 9와 3/4 플랫폼처럼. 이 곳을 뚫고 들어간다면 모험이 펼쳐질 거란 생각에 손을 넣어봅니다. 당연하게도 새로운 세상으로의 모험은 없습니다. 가라앉은 침전물이 이리저리 섞이고 흩어지고 뭉쳤다가 부서집니다. 마치 모험이 없는 이 곳의 인간군상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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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