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굳이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도 좋은 그런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은 글쎄... 어쩌면 누군가가 읽어주었으면 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생각이라고 해야 할지... 누군가가 읽어주었으면, 혹은 읽지 말았으면 하는 그런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써본다.
나의 재미없는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아마 그때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될 거다. 아마 내가 6살 때쯤. 그때는 한 살 위의 누나 한 명과 뱃속에 내 남동생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 일이 있던 날은 겨울이었다. 방안에서도 이빨이 덜덜 떨리던 겨울이었다. 그날따라 눈이 몹시도 거세게 내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면서도 희한하게도 달빛이 무척이나 밝았다. 눈발 사이로 보이는 달빛의 은은한 빛이 시골집 마당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우리 집 똘이가(아마 그때 똘이가 10살쯤 됬었을 거다) 유난히도 컹컹거리며 짖어댔다. 왠지 똘이의 짖음에 무서워져 이불을 둘러쓰고 어머니의 손을 꽉 붙잡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슬슬 돌아올 때쯤 된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숨죽이고 있었다. 서러운 똘이 울음소리만 더욱 거세어질 때쯤, 누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똘이 이놈의 새끼가! 그만 안 짖어!"
몽둥이를 들고 방문을 박차고 나섰다. 빼꼼 고개를 들어 바라본 문 밖에는 누나가 몽둥이를 든 채로 똘이 앞에 서 있었다. 똘이의 울음소리가 더욱 서럽게 들리고, 어머니가 내 손을 뿌리치고 일어섰다.
"아... 아..."
어머니는 몸을 휘청거리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거센 눈발 사이로 누나는 우두커니 서 있고, 똘이는 서럽게 울어댓다. 아버지는 흔들리며 우릴 맞았다. 처맛단의 풍경처럼 매달리신 채로. 아버지는 자살하셨다. 그 이야기를 제대로 듣게 된 건, 또 이해하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을 거다. 그때까지는 아버지가 왜 돌아오지 않으시는지, 어머니가 왜 그렇게 서럽게 우셨는지, 똘이의 울음소리가 왜 그리 서글펐는지, 누나가 왜 가만히 서 있었는지. 잘 몰랐었다. 정확히는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이게 내 재미없는 이야기의 첫 시작이다. 모든 것의 시발점이 되어버린 이야기다. 그 후로 우리 집은 아버지가 없는 삶에 익숙해지는 것만 같았다. 불안 불안했다던 남동생은 무사히 태어났다. 단지 태어나기만. 동생은 장애가 있었다.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걸을 수 없었고, 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중증장애. 내가 15살이 되던 무렵-. 우리의 가족의 모든 초점은 동생에게 맞춰져 있었다. 모든 하루가 동생에게 맞춰져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동생은 더욱 자신의 상황을 깨닫게 되었고, 난폭해져만 갔다. 그래-. 동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다해 모든 불만을 토로했다. 그것은 때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그리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솔직히 나는 그 무렵까지 동생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몰랐다. 단지 어머니와 누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동생은 뜨거운 여름날-.
자살했다.
뒹굴고 기어서 동생은 욕조에 물을 받은 채 자살했다. 동생이 13살이 되던 생일이었다. 삐뚤빼뚤하게 입으로 물고 써 내려간 편지 한 장-. 유서로 봐야 하는 그것이 방 한쪽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죽고 싶어'라는 단 한 단어. 어머니와 누나는 며칠을 울었다. 그렇지만 나는 왠지 울 수 없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냥 약간은 이상하게 변해버린 동생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속 한쪽으론 안도하는 마음도 있었다. 왠지 편안한- 이제 해방이라는 감정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숙이고 웃어버렸다. 난 내 하나뿐인 동생이 죽길 바라왔던 걸까. 어찌 됐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동생에게 맞추던 나날이 끝나던 때였다.
이것은 우리 집의 한 불행이긴 했지만, 개인적으론 그다지 불행이 아닌지도-. 혹은 가장 기분이 좋았던 날일 수도 있었다. 물론 아버지를 떠나보낸 어머니에겐 더욱 큰 상처가 되는 날이기도 했다.
동생마저 죽어 버리고 나자 우리 집은 점점 더 비정상적으로 변해갔다. 어머니는 집착하기 시작하고 누나는 하루 종일 멍해있는 시간이 늘었다. 특히 누나는 말을 걸어도 제대로 대답하는 일이 적어졌다. 그것은 점점 심해졌고, 어느 날인가부터 누나는 방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나를 노려보는 일이 늘었다. 집착. 그것은 나를 옥죄어왔다. 하나의 해방에서 다시금 하나의 구속으로 변해버렸다. 누나는 가끔 광기에 휩싸인 것처럼 나를 살폈다. 내가 19살이 되던 무렵- 그것은 이미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해지게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를 기다리게 되었다. 누나에게서 합법적으로 도망칠 수 있도록.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입대했다.
다시금 겨울이 다가오는 그 시점에 나는 군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글쎄- 몸이 힘든 건 차라리 좋았다. 수많은 갈굼과 욕설, 폭력들도 견딜만했다. 군 시절 겪은 모든 일들이 내가 여태껏 살던 정신적, 육체적 괴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차라리 여기서 살까-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사회에 다시 내팽개쳐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입원했다. 정신이 맛이 가버렸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누나는 집안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친년처럼 이 거리 저거리 헤매고 다니기 일쑤-. 내가 입대한 뒤로는 집안에만 박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누나를 보호하여야 하는 어머니는 모든 괴로움을 다 껴안으셔야 했다. 고통스러운 삶- 하루하루. 죽어버리고만 싶은 기억들. 어머니는 그런 것들 사이에서 살고 계셨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몸의 이상으로 나타났다. 위암 말기. 불과 살 수 있는 날이 3개월도 남지 않은 시한부. 어머니는 곧 죽을 터다. 그리고 나는 공교롭게도 내 전역 날짜와 비슷한 어머니의 입원날짜에 쓴웃음을 흘렸다. 나가서 돈이 되는 일은 뭐라도 해야 했다. 전역하는 날부터 시작된 내 일상은 아침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모두 일 밖에 없었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쳇바퀴 같은 일상. 그 틈틈이 돌보아야 하는 죽어가는 어머니와, 이미 죽은 것만 같은 누나. 누나는 하루 종일 나가 있거나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었다. 눈 앞에 있는 나를 쳐다보지도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누나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난 이제야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난 혼자 앉아있다. 해방되었다. 지겹고도 끔찍한 일상들 속에서 드디어 난 해방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해방은 아니었다. 난 지금 한 가지의 해방을 선택하려 한다. 내 책상 위엔 수백 알의 수면제가 놓여있다. 난 아마 오늘 죽을 거다. 그리고 이게 내가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이야기가 될 거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도망가는 걸 비난할까. 날 동정할까. 세상은 아직도 살만하다고 위로할까. 뭐- 어때. 당신의 생각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텐데.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질문.
만약 당신이 나와 같은- 그러니까 아버지가 목을 메달고, 장애아로 태어난 동생이 물에 머리를 처박아 자살하고, 누나는 정신이 나가 정신병원에, 어머니는 암에 걸려 수많은 빚을 남기고 이 세상에서 도망쳐버렸다. 그렇다면 당신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까. 자- 끝이다. 이 재미없는 이야기도, 내 선택도, 내 지긋지긋한 삶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