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지옥 같던 밤이 지나고, 아침은 다시 밝아왔다. 난 어제의 흔적을 없애려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어제의 흔적은 흘려보냈지만 기억은 더욱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샤워하고 있어?"
밖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내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마치 어젯밤의 일이 꿈인 것만 같이. 아내는 그렇게 어제의 일을 잊은 듯했다. 너무나도 밝은 목소리에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얼른 나와, 아침 먹어야지"
나는 어-라고 대충 대답했다. 나가기 싫다. 뱃속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공포가 입 밖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다. 무섭다, 두렵다, 마주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잠깐 앉아있어, 거의 다 했으니까"
아내는 밝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난 그 모습이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무 일 없는 듯이 행동하는 너는 공포와 절망이었다. 의자에 앉았다.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고민했다. 도망갈 수 있을까. 내가 죽일 수 있을까.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아내가 몸을 돌렸다.
테이블 위에 음식이 차려진다. 아내는 나이프를 한 손에 쥔 채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에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난 지금이 좋아. 우리 둘이 이렇게 앞으로도 함께 영원히. 지금처럼"
아내의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 앞에 놓인 음식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뭐해? 어서 먹어"
아내는 그렇게 말하며 접시에 놓인 음식을 썰기 시작했다. 그 누가 봐도 사람의 손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그것을.
"왜? 먹기 싫어?"
아내는 그렇게 말하며 약지 손가락을 나이프로 잘라 나에게 내밀었다. 반지가 끼워져 있는 약지, 내가 그녀에게 사준 반지.
"왜 그년에게 아직 마음이 남았어?"
아내의 표정이 변했다. 난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발끝을 타고 오르는 공포에 온 몸이 떨렸다. 식은땀이 흐른다.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럼 먹어"
아내의 말에 입을 열었다. 내 입으로 사람의 손이었을 그것이 들어왔다. 그녀의 반지 낀 손이 내 입으로 들어왔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당장이라도 입안의 그것을 뱉어버리고 싶다.
"난 말이야, 우리가 지금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 우리 둘이. 다른 사람 없이 말이야"
아내는 그녀의 손이었던 것을 입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난 먹지도 그렇다고 뱉지도 못한 채 그 앞에 앉아있었다.
"더 먹을래?"
난 아내의 말에 간신히 고개를 흔들었다. 부엌에 놓인 그녀의 눈이 날 쳐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