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버렸다. 가끔씩 혹은 이따금씩 생각나는 기억들의 편린은 날 혼란에 빠트렸다. 집을 찾아갈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한발자욱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곤 발바닥을 통해 올라오는 차디찬 땅의 냉기에, 내가 신발을 신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또한 내가 걸음을 내딛는다는 그 자체도 생소하다는 것도.

난 기억을 되짚었다. 일분 전에 난 무엇을 하고 있었나? 난 어디에 있었나? 여기는 어디인가? 모르겠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십 분 전에는, 한 시간 전에는? 전혀... 아니. 한 가지 기억이 되살아났다. 안개 낀 바다 위에서 스리슬쩍 얼굴을 들이밀듯 기억이 나타났다.

난 걸음을 다시 옮겨 산을 올랐다. 약간 숨이 거칠 어 올 때쯤, 산 중턱에 다다랐다. 그러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내가 죽기로 한 곳이구나. 난 잠시 앉아 산 아래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기억을 잃어버리기 시작할 때쯤, 그렇게 생각했다. 이 곳에서 저녁노을 지는 마을을 바라보며 죽어야겠다고. 붉게 물들어가는 마을만은 내 눈에 기억되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밤이 찾아오고 해는 숨었다. 난 몸을 돌렸다.

내가 여기에 왜 왔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길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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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