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침잠할 것이다. 그건 오랜 세월 나와 함께해 온 깊은 우울감과의 무언의 약속, 혹은 당연한 수순과도 같은 거였다. 마치 당연히 정해져 있는 운명처럼 깊은 어둠은 내 발목을 타고 올라와 어느새 목 밑까지 차올랐다. 아니 내가 스스로 가라앉으려 하는지도. 이 우울감은 항상 불시에 나를 덮쳤다. 순식간에 격류에 휘말리듯, 우울감의 파도는 나를 뒤흔들어 헤어 나오지 못하게 했다.

우울. 불안. 공포. 분노. 슬픔. 절망. 그리고 결국은 허무.

이 모든 감정이 결국은 허무와 비슷하다는 걸. 그걸 깨달은 지금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없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이 우울도 언젠간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마치 먼지가 털어져 나가듯. 그렇게-. 목까지 차오른 우울을 애써 무시했다.

집을 나섰다. 하늘은 내 우울과는 다르게 맑았다. 공기는 이상하리만치 상쾌해서 우울을 조금씩 털어내기 시작했다. 파도가 먼지가 되어 떨어져 나간다. 나는 또 웃기게도 이 우울을 떨쳐내어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멍청하게도.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옥상을 찾았다. 하늘은 맑았다.

그리고 나는 떨쳐내어 버린 줄만 알았던 어둠이 다시금 발목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어찌 이리도 멍청할까. 우울은 날 놀리듯이 목 밑에서 넘실거린다. 멍청한. 우울은 곧 입을 막고 눈을 가리고 나의 세계를 어둡게 만들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공간인 것처럼. 난 죽기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고 싶다. 또 그런데도 불구하고 편해지고 싶고, 또 힘을 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난 지금 일기처럼, 혹은 유서처럼 이렇게 글을 남긴다.

다른 누군가가 혹시 이 글을 본다면, 나와 같은 우울의 격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숨이 막힌다면. 다른 이들은, 당신은.

난 아마 몸을 던질 것이다. 이 우울은 날 그렇게 할 것이다. 기어코 날 그렇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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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