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하는 소리와 함께 바로 옆에서 흙먼지가 비산 했다. 튀어나오는 돌멩이들이 철모를 두들겼다. 삐-하는 이명과 함께 넋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총을 꽉 쥐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참호를 따라 이동한다. 죽을 것만 같이 빨리 뛰던 심장 소리가 삐-하는 이명과 같이 들려온다. 몸 전체가 맥박질 하는 것 같았다. 저 멀리서 더 가까이 그리고 다시 멀리, 쾅쾅하는 우레와 같은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 비명소리 계속해서 이어지는 총소리.

참호를 따라 시체들이 빨랫줄마냥 걸려있다. 넝마주이가 된 몸뚱이는 이리 접히고 저리 꺾여서 표지판마냥 걸려있다. 위험하다, 이곳은 위험하다.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저기 걸려있는 저 녀석은 어젯밤 술기운에 취해 춤을 추던 녀석이다. 이름도 모르고 어떤 녀석인지도 잘 모르지만, 그는 이제 어젯밤 추었던 괴상한 몸짓마냥 멈추어있다. 나는 그를 밟고 넘어가 자리를 이동한다. 그의 핏덩이가 군화에 들러붙었는지 찌걱 거린다.

나는 반쯤은 반파된 건물에 들어섰다. 숨을 최대한 참고 천천히 조심스레 위로 이동한다.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이미 부서졌다. 난 3층 계단 벽에 살짝 기대어 앉았다. 우리는 누굴 위해 싸우는 것인가. 잠시 쓸데없는 고민을 한다. 삐-하던 귀의 이명이 조금은 잦아들었다. 맥박질 치던 심장도 조금은 조용해졌다. 참아왔던 숨소리를 조금 내쉬려던 순간.

덜컹-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총을 꽉 쥐었다. 3층 창가, 그 소리는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는 듯했다. 나는 숨을 최대한 죽이고 창가로 천천히 향했다. 덜컹하는 소리를 낸 적군은 창가에 몸을 기댄 채 아군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난 적군을 향해 소리쳤다. 적군은 어깨를 들썩거리더니 몸을 천천히 돌린다. 난 총구를 까딱였다. 적군은 들고 있던 총을 땅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소년병인가, 너무도 앳된 그의 얼굴엔 눈물 자국이 생겨있다. 난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소년병이 뭐라 소리친다. 어느 나라 말인지 잠시 고민하다 생각을 접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소년병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눈물이 턱을 타고 땅에 떨어진다. 난 총을 그의 얼굴에 겨눴다.

탕-하는 소리와 퍽- 하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리고, 쿵하는 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뜨뜻미지근한 피가 얼굴에 튀었다. 난 소년병의 것이었을 피를 대충 닦아냈다. 죄책감이나 슬픔 따위는 없었다. 앳된 소년병의 죽음이 불러오는 그 어떠한 감정도 없었다. 지금, 여기, 이 곳은 그런 장소였다. 난 소년병이 섰던 창가에 기대어 다른 적군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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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