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남들처럼 살고 싶었다. 가능하지 않은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쑥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이 생각은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내 자유를 옭아매는 모든 것들에 분노하고 있었다.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을진대, 저들은 왜 뛰고 움직이며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난 왜 걷지 못하며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며, 내 의지로는 이 좁은 방안에서조차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그들과 내가 무엇이 그리 다르게 태어났길래 나에겐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주어지지 않았나.

내 몸은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다. 빌어먹을 몸뚱이는 언제나 내 정신의 영역 밖에서 날 놀리듯이 뒤틀리고 흔들릴 뿐이었다. 간신히 그놈의 신경줄기를 붙잡고 안간힘을 써야 내 의견을 들어줄 뿐이었다. 그나마 모든 사지육신 중에서 제일 의견을 피력하기 쉬운 오른손을 움직여 레버를 움직였다. 침대는 레버의 움직임에 따라 덜덜 떨리다가 다시 내려간 뒤에 기어코 다시 올라왔다. 빌어먹을 사지육신, 내 의견을 한 번에 들어준 적이 없다.

창 밖은 비가 내리고 있다. 후두둑하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빗 무리가 있는가 하면, 창안의 날 향해 타다닥하며 달려드는 녀석도 있었다. 마치 내가 도망가거나 피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날 향해 달려드는 녀석들을 향해 욕지기라도 내뱉어주고 싶었지만, 글쎄 내 어눌한 말을 녀석들이 알아들을까 싶어 그만두었다. 한참을 그렇게 떨어지는, 혹은 달려드는 빗방울을 보던 즈음 방 문이 열렸다.

"자니?"

엄마는 항상 그렇게 물었다. 언제나 어느 시간대나 어느 때고. 내가 자는 것 외에는 그다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엄마는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인지 "안 자는구나"하고 말을 이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고개를 돌리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내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새 도우미 아줌마가 올 거야, 처음 일하시는 분이니까 불편해도 조금만 참아줘, 알았지?"

난 또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소용인가. 내가 대답을 하던 하지 않던 그 사람이 필요할 텐데. 나의 반응을 살피던 엄마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도우미라는 분들은 기계와 같았다. 날 위해 움직이는 로봇과 같은, 날 씻기고 밥 먹여주고 앉히고 심지어 대소변도. 그건 참 치욕적인 일이지만 별 수 있나. 이 빌어먹을 몸뚱이가 파업을 멈추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또 나 혼자만의 지루한 몸뚱이와의 대립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나마 말 잘 듣던 녀석이 오늘따라 유난히 말을 안 듣는다. 빌어먹을 자식, 간신히 침대를 눕히고 눈을 감았다. 말 안 듣는 녀석들을 집중해 움직인다는 건 꽤나 정신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노사관계가 이리도 원활하지 않아서야, 항상 투쟁 현장에 있는 기분이다. 도우미가 오기 전까지는 눈을 붙일 생각이었다. 그래야 치욕적인 상황에서 내 의견을 조금이나마 피력할 수 있으니(몸이 피로하면 더욱 말을 안 들으니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눈꺼풀이 세상과의 단절을 고하려 할 때쯤 다시 문이 열렸다. 나는 자못 궁금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어차피 난 그들의 일거리이니, 그들이 날 달가워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고, 난 그들의 기계 같음이 달갑지 않았다. 날 대하는 그 태도들의 기저에 깔려있는 연민도 싫었다. 그들의 연민과 차가운 태도들은 날 더욱 가라앉게 만들었다. 도우미 아줌마는 잠시 문 앞에 선 채로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내 등을 살피고 있을까. 엄마처럼 '자니?'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뿐이라고 단정 짖고 있는 것일까. 잠시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내 옆의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곤 가벼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일하게 됐어요, 피곤한 게 좀 풀리시면 말씀해 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옆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빗방울 소리와 함께 적막한 방안을 가득 채웠다. 난 슬쩍 고개를 돌리려 했다. 물론 이 빌어먹을 몸뚱이는 삐걱거리며 덜덜거리며 돌아갔다. 그녀는 조금은 퉁퉁한 외모에, 인상 좋은 아줌마라고 보기엔 조금은 어린 여성이었다. 30대 초반은 되었을까. 그녀는 내가 얼굴을 돌린 것을 보고는 살짝 웃으며 눈인사를 했다. 난 되도록이며 입을 열고 싶지 않았지만 어눌한 입을 놀려 인사했다. 그녀는 내 어눌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 인사를 받았다.

그녀는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주로 그녀는 자신이 재잘거리는 편이었지만, 틈틈이 나에게 불편한 것이 있는지 혹은 자신의 얘기에 질문은 없는지 물어왔다. 여태껏 많은 도우미들의 행동과 너무도 다른 그녀의 행동에 난 잠깐 멍하니 있어야만 했다. 그 순간에도 그녀는 자신이 이 일이 처음이니 실수가 있어도 조금만 이해해달라는 등의 말을 이어나갔다. 난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말하는 것도 불편했다. 그게 실질적인 움직임에 따른 것이 아니라, 내 얘기를 듣는 그들의 행동에서 기인한 불편함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가 어떤 얘기를 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다들 인상을 찡그리고, 그 자리에서 어찌하면 최대한 말을 안 섞을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난 그런 반응에 말을 더욱 하지 않았다. 그들과 나 모두에게 고통이며 상처가 되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나의 말을 계속해서 들어주었다. 조용히 내가 말이 끝날 때까지 웃으며 말을 듣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난 오랜만에 느끼는, 심지어 가족과도 느껴본 적이 없던 수다라는 행위의 안도감에 빠져가고 있었다. 그녀가 실질적인 도우미 활동을 한 거라곤 내 몸을 몇 번 뒤척인 것과 대소변 통(난 개인적으로 이걸 인격 말살의 쓰레기통이라 부른다)을 정리해 준 것 밖에 없었지만. 난 요 몇 년간 처음 느껴본 사람대 사람의 대화라는 것에 매우 충실한 충족감을 얻어냈다.

그녀가 돌아간 그 순간부터 나는 그녀와의 대화가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분노의 원천이 사람과의 단절이자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해 발로된 것임을 깨닫게 했다. 여전히 창 밖의 비는 나에게 몰아치듯 창을 두들기곤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열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날이 밝았다. 그녀는 꽤나 이른 시간부터(라고는 하지만 그녀에겐 점심쯤인 시간부터) 나에게 밥을 먹여주고 또다시 재잘거리며 이야길 이어갔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잘 이어지지 않는 말을 되뇌어가며 혼자 말하기를 몇 년이었나. 그런 나에게 있어서 그녀와의 대화는 지성체끼리의 의견 나눔의 장이니 기분이 들뜰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내 이야기를 듣던 그녀가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더니 입을 열었다. 난 그녀가 내 이야기가 지루한가 싶어 덜컥 두려움이 피어났다. 모처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생겼나 싶었더니, 그녀 또한 날 지루해하고 불편해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조금은 의외의 것이었다.

"글을 써보는 건 어때요?"

나는 그 말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이윽고 이어진 그녀의 말들 속에서 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무언가를 권한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날 낳아놓은 부모님마저 나에게 바라는 건 그저 살아 숨 쉬는 것뿐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남들과 같이, 남들처럼 무언가를 권한 것에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그녀의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물음이 나에겐 크나큰 충격의 격류가 되어 날 적셨다.

그동안 느껴본 적 없던, 메말라가던 내 삶에 대한 의지에 단비와 같았다. 나도 무언가 꽃 피울 수 있는 사람일까. 평생 누군가에게 피해만 끼치고 먹구름이었던 나도. 식물과 다를 바 없는 삶에서 나도 무언갈 할 수 있을까. 이런 빌어먹을 몸뚱이로도 무언갈 할 수 있을까.

"어때요?"

난 그녀의 물음에 삐걱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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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