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아마 악하게 태어날 것이라 믿는다. 누군가의 괴로움, 혹은 슬픔. 고통과 불행을 주제로 한 비극이란 극의 장르를 봐도 그렇다. 누군가가 괴로워하면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 과정을 지켜봄으로써 느껴지는 카타르시스, 그것은 아마 인간이 악하게 태어난 증거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이 사람답게(여기서 사람답게란 흔히 선한, 도덕과 규범을 잘 지키는 따위다) 살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 또한 비극의 범주에서 자신은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교육과 법으로 누군가가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는 걸 최소화하기 위한 일 따위가 아닐까. 자신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알기에 자신이 당하는 게 싫은. 그렇다면 사람운 태어남 자체로 악한가? 악하게 태어났으니 그들은 갱생의 여지가 없나? 그렇다면 성인은 왜 만들어지는 것이고 왜 다른 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인가.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아까 말했던 비극이란 장르에 기대어 다시 한번 설명할 수 있다. 성인, 그들은 그들의 비극에 심취한 사람들이다. 난 단연코 그렇게 믿고 있다. 자신을 비극으로 조금씩 차근차근 몰아넣음으로써 그들은 거기서 느껴지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카타르시스로 보상받는 것이다. 그건 마치 어떠한 중독과도 같은 것이다. 그들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은 비극, 자신의 희생에 대한 카타르시스. 그것에 중독되어버린 자들의 행위라는 것이다.

나비의 날개를 찢고 개미의 몸에 불을 붙이는 아이의 순수함이란, 그저 남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자신은 그 비극의 뒤에 숨어서 웃을 수 있은 그런 악함이 아닐까. 사실 비극을 즐기는 모든 이가, 세상의 모든 비극이 아이의 순수함과 같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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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