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었다"

감흥이 없다. 아무런 기분도 들지 않는다. 내가 죽었다. 난 죽었다. 아무리 말해봐도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고, 숨 쉬고-.

난 살아있다. 누구든지 나에게 심장이 멈췄다고 할 수는 있었지만, 죽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나는 살아있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며 중얼거린다. 그래- 난 살아있다. 아무리 해도 실감은 나지 않지만 난 살아있다. 심장도 뛰지 않고,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가고, 몇 시간이 지났는지 어느새 몸 곳곳에 시반이 퍼지고 있지마는. 그렇지마는 나는 살아있다.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 관절이 뻑뻑하고 곧 부서질 것만 같지만 살아있다. 피부가 찢기어져 메말라버린 근육이 드러날 것만 같지마는 나는 살아있다. 나는 창백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수많은 고민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시체다"

쿠웅- 하는 느낌과 함께, 그제야 나의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쿵쿵쿵쿵하고 내 처지가 실감이 됐다. 나는 시체다. 나는 죽었다고 볼 수는 없지마는 시체라곤 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좀비-. 미국 드라마에서나 혹은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그러한 좀비. 나는 시체다. 키키킥-하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손을 들어 올려 머리를 긁적거린다. 찌지지직-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손톱 끝에 피부 조각이 찢겨 나온다. 손톱 끝에서 아무렇게나 찢긴 피부- 그리고 그 위로 뻗어진 머리카락. 왠지 모르게 더 웃음이 터져 나온다. 뭐 이런 코미디가 다 있어! 하고 소리 내어 말해본다. 손톱 끝에 걸린 기분 나쁜 피부 조각을 옷에 쓱쓱 문질러 닦는다. 청바지 위에 검게 죽은 핏자국이 붓칠 한 것 마냥 새겨진다. 나는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하나-하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직 딱히 그렇게 확 티가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뭐. 될 수 있는 만큼 살아보지 뭐-하고 속 편히 생각했다. 이미 썩어 문드러져가는 몸뚱이다. 방부처리를 해도 늦겠지. 그 증거로 소매를 걷은 팔 안쪽은 이미 모두 썩어 들어갔다.

침대 한쪽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핸드폰을 집어 든다. 날짜를 보니 내가 '죽어있던' 시간은 5일. 꽤나 많은 시간이 흘러있었다. 핸드폰에는 미확인 문자 2통이 남겨져 있다. 잠금화면을 열고 메시지부터 확인한다.

[ 오늘 밤 재워주실래요? 010-1234-5678]

지랄하네. 아-? 가볼까.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식겁하겠지? 피식-하고 웃음이 흘러나온다. 되지도 않는 생각하고 있다. 그나저나 이 새끼들은 내가 '죽어있던' 걸 알고 이런 문자를 보냈으려나. 뭐- 알 턱이 없지. 병신들. 다음 문자는-

[야- 술 먹자-]

아-이 병신. 또 술먹쟤. 꺼져라 씨뱅아. 분명 술 처먹으면서 돈이나 꿔달라고 하겠지. 시벌놈이 돈 빌려달라고 할 거면 술값은 지가 내던지. 개 같은 놈. 모든 연락을 확인하고 나서는 가만히 앉아있다. 뭐 할 게 없다. 진짜 인간관계 좁구나. 5일 동안 연락 온건 빌어먹을 빈대 새끼 하나랑, 스팸전화 하나. 괜히 씁쓸하다. 문을 열자 바람이 쏟아져 들어온다. 밖에나 나가볼까? 잠시 고민하다가 방 한쪽 구석에 걸려있던 모자를 집어 든다. 마스크 대신 목도리를 하나 찾아 목에 두른다. 방문을 열고 밖을 나서자 살을 메마르게 하는 햇빛이 쏟아져내린다. 피부가 더 빨리 썩어 들어가지는 않겠지? 잠시 걱정하다가,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걸 보고는 그냥 밖으로 나섰다.

약간은 시야가 흐릿하게 보이는 세상. 이나마도 감사해야 할까. 점점 몸이 뜻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몸이 완전히 멈춰버리기 전에 어딜가야할까. 몸이 죽어버리기 전에 어딜가야할까. 완전히 죽어버리기 전에. 잠시 고민하다가 몸을 움직인다. 모르겠다. 받아주실까. 얼마 만에 찾아가는 거지?

수많은 고민을 하며 걸음을 옮긴다. 썩어가는 몸뚱이에선 이상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는지 슬슬 사람들이 나를 피한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사람도 있다. 마주 인상을 써준다. 그들의 표정이 기괴하게 바뀌어 얼른 눈을 피한다. 병신들-. 덤비지 마. 물어버릴 거야. 혹시 알아? 내가 물면 진짜 좀비처럼 전염될지도? 잠시 궁금했지만 안 하기로 한다. 고마운 줄 알아 시발. 전염은 안돼도 기분은 더럽겠지. 아니면 세균 감염이라도 될지도...

쓸데없는 생각.

때마침 버스정류장에 온 버스에 탑승하려 하지만 기사가 제지한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는 단호하게 내리게 한다. 아 시벌. 그냥 걸어서 가기로 한다. 사실 딱히 먼 거리도 아니고. 한 30분 걸으면 되려나. 터덜터덜 걸음을 옮긴다. 발바닥이 찢기는 기분이 든다. 뭐-찢겼겠지. 하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어느새 이 썩어버린 몸뚱이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발목이 뒤틀린 것도 같다. 뭐 어때. 아픈 것도 아닌데. 무릎이 점점 굳어가는 것만 같다. 뭐 어때. 어차피 지금도 사람들이 피하는데.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니 꼬마애 무리들이 물총 싸움을 하며 뛰어온다. 얼씨구- 좋을 때다. 조심해라 나처럼 되기 전에-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꼬마애 한 명이 나에게 몸을 부딪힌다. 뻐걱-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으며, 바닥에 뒹굴었다. 꼬마가 재빠르게 일어나 나를 쳐다보고는, 잔뜩 굳은 얼굴로 도망친다. 야-인마. 사람을 넘어트렸으면 사과를 해야 하는 거야! 뭐 지금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킨다. 아아-시발.

왼쪽 무릎이 부서졌다. 아예 덜렁거린다.
...꼬마가 사과도 못 하고 도망갈 만도 하네. 으쌰-하고 몸을 일으킨다. 아예 못 걸을 정도는 아니다. 절뚝거리며 걸을 순 있겠지. 꼬마야 놀라게 해서 미안해. 도망가는 꼬마에게 손을 흔든다. 아아-걷는 게 조금 더 느려지려나. 천천히 가지 뭐-. 걸음을 옮긴다.

느리게 걷는 건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준다. 수많은 풍경- 느리게 스쳐 지나가는 길거리의 사물들. 절뚝거리며 걷는 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약간 흐리게 보인다는 단점 빼고는... 진작 왜 이런 풍경을 보고 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생긴다. 하긴- 그때야 게임에 미치고, 술에 미치고, 담배에 미치고. 주변을 볼 시간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변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공원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공원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까악-까악-

울고 있는 저 까마귀들은 지나치게 많이 보인다. 그것은 마치 날 노리고 있는 행동 같았다. 잠깐-. 그런데 까마귀도 시체를 먹나?... 뭐-. 못 먹을 건 또 뭐야. 그렇게 생각하니 저것들이 진짜 나를 노리는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나는 녀석들에게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걸음을 옮겼다. 아직은 안돼 이 새끼들아. 아직은. 먹더라도 내가 아예 멈추고 먹으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어느새 내가 가야 할 곳이 다가오고 있다. 벌써 눈 앞에 보인다. 붉은 담벼락. 푸른색 대문. 그 위로 솟아있는 동그란 호박 전등 두 개. 밤마다 노랗게 불빛이 들어오는 호박 전등. 저 밑에서 매일 엄마를 기다리곤 했다. 엄마는 항상 늦은 시간에 나에게 줄 간식 봉투를 손에 들고, 내가 온 길을 통해서 걸어오셨다. 노란 전등 밑에서 난 엄마를 안고 엄마는 그런 나를 안고. 밀려드는 추억들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걸린다. 조심스레 문 앞에 다가가 벨을 누른다. 띠링-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아-, 어디 가셨나.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파란 대문 앞에 기대어 앉는다. 무릎을 당겨 얼굴을 파묻는다. 쩌걱쩌걱-하는 피부가 들러붙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울려 퍼진다.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빨리 흐른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주변을 살피고 있노라면 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 용기도 없어서 그냥 지나가는 것들만 구경한다. 시야는 점점 흐려지고, 흐릿하게- 거멓게만 보인다. 가끔 뻐얼건 무언가가 왔다 갔다 한다.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다. 시발. 쳐다보지 마. 조용히 입 밖으로 내뱉는다. 땅거미가 지고 바닥에 빨간 노을이 내려앉는다. 빨간 노을은 검은 그림자를 만들고, 마치 자꾸 커져만 가는 거인처럼 자신을 늘린다. 그리고 저 멀리서 그 그림자의 주인이 나에게 다가왔다.

"...아들?"

대답할 수가 없다. 목이 막힌다. 입이 메말랐다. 일어설 수 없다. 몸에 힘이 들어간다. 주먹을 움켜쥔다. 썩은 고름이 손바닥에 흘러내린다. 몸이 들썩거린다. 움직일 수 없다. 아니 움직이면 안 된다. 다가오지 마요. 엄마. 다가오지 마요. 다가오면 안 돼요. 엄마. 안돼요.

"아들... 맞지?"

...엄마! 엄마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잊을 수 없다. 언제나 따뜻하게 내 맘을 감싼다. 어느새 엄마는 내 앞에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안돼요 엄마. 안돼요. 말을 하고 싶지만 입을 열 수 없다. 입술이 찢어질 것 같다. 썩어버린 피부 조각이 뜯겨내릴 것 같다. 엄마가 잡은 어깨가 덜컥- 빠지는 느낌이 든다.

"아들 맞는 거지? 그렇지?"

엄마...!

일어서서 엄마를 끌어안는다. 맛있는 냄새가 난다. 아마 엄마가 또 맛있는 간식을 사 오셨나 보다. 맛있는 간식을. 베어 물은 고깃 조각에서 피가 흐른다. 달콤하다.

"어... 마...?"

엄마도 움직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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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