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가을바람이 낙엽을 쓸어내자, 네가 망친 내 추억이 그리움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게도 괴로워하며 슬퍼하며 네가 나에게 주었던 모든 상처들이 가벼운 가을바람을 타고 무겁게 나를 내리눌렀다. 넌 그렇게 날 떠났지만, 난 그 상처와 함께 널 사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이가 들면 사랑에 눈물 흘리지 않는다는 말은, 정말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의 헛소리에 불과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정말이지 틀린 이야기였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감에도. 그 시절 네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날 눈물짓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너를 그리워했다. 미련한 감정은 네가 남긴 상처를 추억으로 뒤덮어, 그리워해선 안될 널 그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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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겉보기엔 괜찮아 보였다. 그렇기에 넌 가슴 깊숙한 곳부터 썩어 어그러져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우리의 잣대로 널 판단했다. 네가 하는 행동 하나, 말하는 토씨 하나, 일하는 모습, 움직이는 일상, 삶을 살아가는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의 틀에 널 끼워 넣었다. 그게 네가 살아가려 함으로써 하는 지극히 괜찮은 척하는 모습이란 걸, 지옥과도 같았던 경험은 기억 속 어딘가로 묻어두려 노력이었단 걸.

우리는 우리의 잣대로 너의 상처를 후벼 파고 있었다. 가슴을 도려내고 후벼내어 너의 눈물을 봐야만 너의 상처를 이해하는 척할 수 있었기에. 피해자는 피해자답게, 우리의 잣대로 너의 괜찮은 모습은 정의가 아니었다.

네가 울고 화내며 분노하고 절망하며 슬퍼하고 울분을 토해내길 바랐다. 피해자인 너에게 웃음은 있을 리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너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널 위한다는 핑계로 널 죽여가고 있었다. 너의 상황은 신경 쓰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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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의 그 악의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너의 악의가 주는 희열이 죄책감의 송곳으로 변해 심장을 찔러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너의 악의에 일종의 경외감을 가진 채, 순수한 악의, 분노를 뿜어대는 널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모공을 쭈뼛하게 만드는 그 난데없는 악의는 너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너를 두려워함과 동시에 애정 할 수밖에 없었다. 너의 그 악의는 순수하리만치 섬뜩하여 내 죄책감을 짖뭉게는 것과 동시에, 참을 수 없는 희열을 선사했다. 그래서 난 너를 욕하며 미워하며 분노하면서도, 너를 기다리며 그리워하며 바라고 있었다. 너의 악의에 진저리 치면서도 그 악의에 열광했다. 너의 악의란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죄책감으로 말미암은 카타르시스는 날 너의 악의에 동조하게 만들었다. 인격적으로 도의적으로와 같은 말 따위는 집어치운 채 순수한 너의 그 악의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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