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내 의지와 다르게 천천히 흘렀다. 째깍거리는 시곗바늘 소리가 늘어진 테이프 소리처럼 들렸다. 손톱을 물어뜯었다. 손톱 거스러미를 따라 쭉 뜯겨 올라가는 살덩이에 피가 흘러나왔다. 손톱을 따라 핏방울이 뚝. 시계는 오후 네시를 넘어 흐르고 있다. 또각 거리며 손톱을 물어뜯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고통이 시간의 흐름을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고통이 강하면 강할수록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손톱 끝에 가 있는 것처럼. 또각 또각. 잘게 뜯긴 손톱 조각들이 입안을 거칠 거리며 돌아다녔다. 침을 모아 바닥에 손톱과 같이 뱉어버렸다.

노을의 끝자락은 유난히도 길었다. 입안을 맴도는 핏방울이 비릿했다. 또각-. 더 이상 고통으로 정신을 붙들어 매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야, 시간은 여섯 시로 다다랐다. 몸속 어딘가에 불안함을 생산해내는 공장이 있어서, 불안한을 미친 듯이 생성해 나가는 것만 같았다. 손 끝이 욱신거리었다. 입안에 맴도는 피맛이 묘하게 선명했다. 노을이 사라져 어둠만 남을 때쯤, 집 앞에 도착했다.

난 또 손톱을 물어뜯었다. 또각또각또각또각. 내 의지란 참으로 박약해서 저 작은 금속 문고리 조차 돌리질 못하고 있었다. 비릿한 피맛이 불안함을 가려주는 약인 것처럼 계속해서 손톱을 물어뜯었다. 열 손가락이 모두 뻘겋게 물들고 나서야 문고리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 문고리가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문 너머로 들려오는 차가운 적막은 불안함을 증폭시켰다. 간신히 숨을 들이켰다. 차가운 적막이 폐부 깊숙이 들어차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간신히 문고리를 돌렸다. 끼익 하는 소리 이후, 역시나 예상하듯 그 차가운 적막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난 차마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 채 간절히 눈을 굴렸다.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아니 익숙해지지 않기를. 내 눈이 이 어둠을 가려낼 수 없기를. 언제나 내 희망은 현실과 어긋나 있었다. 이젠 또각거릴 수도 없는 손톱을 입으로 가져갔다. 비릿한 피맛이 정신을 일깨웠다. 어둠 속 어머니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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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의 일기장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냐이는 나이의 오타인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어쩐지 냐이라고 하는 것이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같아서 좋았다. 나이를 먹음에 있어서 항상 늙어간다는 슬픈 일만이 아닌, 고양이의 그것과 같이 누군가에겐 기쁨으로 누군가에겐 정감으로 남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난 냐이라고 하기로 했다.'

참으로 그 아이다운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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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죽을 거라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길 바랬다. 그게 눈을 감은 채로 잠든 것과 같은 죽음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 될 터였다. 죽음은 언제나 내 목 밑에서 내 숨통을 조이곤 했다. 턱을 타고 코 끝을 넘실거리는 죽음은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이, 언제나 숨만 간신히 뻐끔거릴 수 있게 숨통을 슬며시 열어주곤 했다. 온몸에 주렁주렁 달린 이 차가운 장치들이 죽음의 물결에서 내 머리칼을 움켜쥐고 간신히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난 언제나 이 차가운 병동 안에서 죽음을 꿈꾸곤 했다. 살기를 바라면서 더욱 오랜 시간 이승에 머물길 바라면서, 그러면서도 아주 초연히 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모든 고통은 배제하고 싶었다.

부지불식간에 날 덮치는 고통은 죽음이란 녀석의 장난질에 불과했다. 언제든 난 그 녀석 안으로 빨려 들어 어둠 속으로 고통밖에 남지 않은 어둠 속에서 저 죽음 밖으로 손 끝 하나라도 뻗어보려 애쓰는 것이다. 죽음은 웃고 있을 터다. 이 병동에서 난 요주의 인물이었다. 비정한 운명 앞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었다. 언제고 죽어 바스러질 몸뚱이, 의사들의 눈은 내 죽음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기적, 그래 그들 눈에는 이만큼이고 살아있는 내가 기적과 다를 바 없었다.

나도 죽고는 싶었다. 휘몰아치는 고통 속에서 내 삶은 더욱 비참한 신세가 될게 뻔함에도 불구하고 난 죽지 못했다. 감정이라곤 하나 없는 이 매정한 줄들은 날 죽지 않게 했다. 나날이 곯아가는 내 몸뚱이가 살아있음은 과학의 산물일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똥밭을 구르는 것과 다를 바 없음에도 난 꾸역꾸역 삶을 하루하루 지내고 있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고 싶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살아있는 이상, 꾸역꾸역 이 하루를 지새워 노을을 바라보고도 싶었다. 죽음이란 녀석에게 무릎 꿇고 빌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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