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병을 들었다. 언제든지 불을 붙일 수 있게 라이터를 들었다. 태양의 이글거림보다 저 밑에서 이글거리는 불길이 더욱 뜨거웠다. 불길은 언제든지 우리를 집어삼킬 것처럼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옆 가게 김 사장은 굵은 땀방울을 닦아내며 계속해서 욕지기를 내뱉었다. 불이 붙은 화염병이 하늘로 치솟았다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온갖 소리가 귀를 어지럽힌다. 모든 것이 느린 화면으로 재생되는 비디오 같았다. 늘어진 화면으로 모든 소리와 동작과 상황들이 질질 늘어지며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콧 속을 매캐하게 파고드는 향기만이 늘어진 시간과 다르게 강렬했다. 난 늘어진 시선을 김 사장에게서 저 밑에서 물대포를 쏴대는 경찰에게 돌렸다.

어린 저 경찰의 머리 위로 화염병이 떨어져 내린다. 검은 그의 몸뚱이에 불길을 머금은 기름이 흘러내렸다. 갈 곳 없는 분노는 저 어린 경찰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대치하는 우리네의 입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저 어린 경찰의 머리 위로 쓸 데 없는 불길이 치솟았다. 하늘 위로 쏟아졌던 물줄기가 옥상을 적시고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손에 들었던 화염병을 내려놓았다. 손에 들었던 라이터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미 몸은 쏟아지는 물줄기에 젖어 눈물 같은 물줄기를 바닥으로 뚝뚝 떨구고 있었다.

저 바닥이 여기 이 곳보다 높은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우리의 삶은, 불길과 물길에 막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누구네의 대변도 못 할 이 상황은 결국 이렇게 끝날 운명이라 생각 들었다. 옥상 난간은 참으로 저 바닥보다 낮은 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바닥으로 더 떨어질 곳이 없는 이 옥상은 불길에 뒤덮여 매캐한 연기만 하늘로 뿜어댔다. 이제 저 바닥으로 불길이 없는 저 바닥으로 뛰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바닥으로 저 바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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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뻗은 길을 달린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는 스트로브 잣나무 군락이 스쳐 지나간다. 도로는 끝없이 이어진다. 일정한 속도로 뻗어가는 아스팔트 도로는 지평선과 맞닿아 끊임없이 토해내 진다. 매정히도 시간은 뜨거운 태양과 맞물려 끝을 향해 달린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떨어져 버리지 않게 계속해서 저 태양 안으로 차를 달린다. 이카루스 마냥 솟아있는 산맥이 눈 앞을 가로막는다.

차는 도로를 달린다. 끊김 없는 저 길을 달린다. 수 시간 이어진 고된 운전은 졸음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라디오를 튼다. 알 수 없는 언어로 이어지는 말의 연속이 귀를 간질인다. 시간은 차와 같이 이동했다. 저 멀리 수평선 끝으로, 밤이 찾아오는 노을의 시간 틈으로, 기어코 바닥으로 충돌한다. 어둠은 태양의 폭발과 함께 찾아왔다. 스리슬쩍 어둠을 두른 별들은 보이지 않는 대지를 비춘다.

난 여행을 계속한다. 차를 몰아 저 어둠을 달린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는 저 스트로브 잣나무 길 사이를 내달린다. 저 지평선 끝 어둠을 두른 별들을 향해 차를 내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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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깨달았다. 그건 오늘 자신이 죽을 거라는 직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확신.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원리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계속되어온 이 예지와 같은 일들은, 불길하게도 높은 확률로 현실이 되어 그녀 앞에 나타났다. 일종의 저주라고나 할까 아니면 신의 저주? 알게 뭐란 말인가. 그녀는 엄습해오는 공포를 억지로 짓눌렀다.

사실 사람의 운명이란 끝이 정해져 있는 게임일지도 몰랐다. 자기 의지로 행하는 모든 것들이 신의 게임판 위에서 차근차근 죽음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 끝은 결국 신의 놀음질에 의해 누군가는 빨리, 또 누군가는 오랜 시간 동안 버티고 버티다 절벽으로 쿵-. 그런 것이리라. 그녀는 오랜 시간 반복되어온 그 직감으로 인해 알 수 있었다. 오늘 자신은 죽는다.

그녀에게 죽음이란 멀리 있지 않은 것이었다. 언제나 삶의 옆에서, 외줄 타기의 벼랑처럼 그녀와 함께해 왔다. 주위의 누군가가 죽는 것은 그녀에게 아무런 감흥을 불러오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부모가 죽었을 때도, 또 자신의 아이가 죽었을 때도. 그녀는 그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삶은 죽음과 맞닿아 있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든 죽음은 삶으로 삶은 죽음으로 뒤집히는 것이다. 사람의 운명이란 바람에 흩날리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상황에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직감에서 일어난 공포란 어디서 일어나는 것일까. 죽음, 공포, 삶의 마지막. 그녀는 발바닥을 간질이는 공포가 어느새 온몸을 덮친 걸 느끼고 있었다.

붉은 피가 쏟아질 것이다. 머리 위로 쏟아진 붉은 피는 머리칼을 타고 흘러내려 눈 위로, 콧방울을 타고 흘러 턱으로, 그리고 목을 타고 가슴을 적실 것이다. 배를 지나 허벅지를 적신 붉은 피는 땅으로 떨어져 찌걱 거리는 피의 연못을 만들 것이다. 그녀는 처음 느껴보는 죽음의 공포란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것은 다른 이들을 통해서는 느낄 수 없는 삶에 대한 욕망. 불타오르는 뜨거운 열망.

살고자 하는 의지!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생전 처음으로 삶을 향한 욕망을 느꼈다. 복부를 간질이는 그 열망은 입을 통해 터져 나왔다. 살고 싶다. 절실히 살고 싶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직감을 되짚어 죽음의 흔적을 찾았다. 피, 머리칼을 적시는 그 피! 밖은 위험하다. 그녀는 집안에 틀어박혀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째깍째깍-.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한 시간, 그리고 두 시간. 그녀의 시간은 천천히 자정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이윽고 열두 시. 댕댕-하는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치밀어 오르는 살고자 했던 열망은 눈물로 터져 나왔다.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댕댕-.

뻐걱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머리 위로 지붕이 부서져 내렸다. 피, 붉은 피. 그녀의 머리칼이 붉게 물들었다. 댕댕-하는 소리가 또 이어졌다. 아직 시곗바늘은 열두 시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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