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가혹한 것은 어찌 보면 자신에게 하는 일종의 화풀이와 같았다. 혹은 가학, 스스로에게 행하는 DV. 아니, 자신에게 하는 것이니 자해라고 해야 할까. 자기 자신의 이상점에 자신을 비교하여 내리는 스스로의 형벌. 그것과 같이 내리워진 모든 자기부정. 마음속의 아이언 메이든에 내 정신을 욱여넣고 꼬챙이에 꿰뚫려 추악한 속내를 흘려댔다.

마조히스트라 부르는 게 맞을 것만 같은 지독한 자기 검열, 부정, 그리고 혐오. 그것은 다른 이에게 나를 맞추기 위한 과정이었고, 또 그들과 다름없이 그들 틈에 섞일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보여주기 위한 과장. 난 스스로를 고문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자존감은 땅으로 떨어져 내렸고, 자애심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틈이 필요했다. 아주 작은 틈, 아이언 메이든의 아주 작은 미약한 틈 사이라도. 숨 쉴 수 있는 아주 작은 틈. 헐떡이는 숨이라도 쉬게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그런 미세한 틈. 스스로에게 내리는 형벌은 끝날 수 없었다. 죽기 전에는. 살기 위해선 아주 작은 숨이라도 헐떡이기 위해선 나에겐 아주 작은 틈이라도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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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

꺼지는 불 빛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의 방에서 내 목소리가 들릴 리 없음을 알지만 난 항상 이렇게 말을 건넸다. 가로등 불빛이 들지 않은 벽에 기대서서 난 네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밤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네가 집으로 올라간 뒤에도 한참을, 불이 꺼지기까지 또 한참을. 난 밤공기에 흐려진 너의 뒷모습을 생각하며 시간을 흘렸다.

오늘은 이만, 너에게 들릴 리 없는 마지막 말을 하고 걸음을 옮겼다. 널 알게 된지 며칠, 몇 달, 그리고 몇 년. 계절이 바뀌고 같은 계절이 오기를 몇 번. 난 언제나 널 바라보았고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생각을 하며 널 배웅했다. 나만 알고 있는 너의 행동을 난 매번 같이 반복하며, 머리 속에 널 그렸다.

너의 검은 머릿결, 하얀 피부, 붉은 입술, 가늘고 긴 손가락, 치마 밑의 부드러운 허벅지, 작은 발. 머리 속에 널 그린다. 난 너를 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잘 자, 내 사랑"

너에게 들릴 리도 없고 네가 날 알리도 없지만. 오늘도 또 불 꺼진 너의 방을 바라보며, 너에게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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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 어딘가 그 어딘가에 당신이 살아있을 거라 믿습니다. 내 목소리도, 내 몸짓도, 내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그 먼 곳에 당신이 살아있을 거라 믿습니다. 아주 멀고 멀어서 당신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 먼 곳에 있으리라 믿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삶을 꾸리고, 당신의 언어로 말을 하고, 당신의 몸짓으로 다른 이들과 삶을 꾸려가리라 믿습니다. 내가 없는 그곳에서 당신이 분명히 살아있으리라 믿습니다. 말도 몸짓도 우리의 추억도 없지마는, 당신이 살아있으리라 믿습니다.

당신이 날 찾아오지 않는 것이 그저 내가 싫증이 나서, 나라는 사람을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기를, 내가 미워서, 혹은 나와의 추억이 악몽과 같아서. 그래서 당신이 나를 찾지 않는 것이리라 믿습니다.

당신이 내가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에 살아있으리라 간절히 또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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