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어와 문장과 글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감성들에 명칭을 붙이는 게 싫다. 청춘의 사랑이야기가 어느 누군가의 마음을 간질이듯, 어깨 위 짊어지게 된 삶의 고난이 담긴 어른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짓누르듯, 꺼져가는 어르신들의 생명에 대한 이야기가 먹먹하듯. 그들의 이야기를 그저 어떠한 명칭을 붙임으로써 퇴색되어가는 게 싫다. 아주 작은 사소한 그 명칭은 시를 시로써, 글을 글로써 읽어나가는 감정을 뭉뚱그려버린다. 그것은 일종의 비하와 멸시가 담긴 것으로써 풍부해져야 할 감성을 짖뭉개기에 충분했다.

사랑이야기가 마음을 간지럽히는 게 언제부터 오글 거리는 것이 되었나. 다른 이의 마음이 살랑 거리는 게 그리도 불편하였던가. 그들의 사랑이야기 속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을 텐데 그들은 그렇게 단정 지어버리는 것으로 더 이상 이런 이야기가 쓰일 수 없게 되었다. 글을 씀에 있어서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것은 참으로 비굴한 일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오롯이 써 내려가야 하는 게 글이라면, 이렇게 별칭 지어진 감정들을 써 내려갈 수가 있는 것일까. 남들의 입에 거론될 그 감정들은 점점 사장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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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

"젊음이란 좋은 것이지, 언제든 어느 때곤 실패를 해도 되돌아갈 시간이 있단 얘기야. 저 절망의 끝에서 유턴할 시간은 우리네에겐 더 이상 없거든, 그래 얼마나 좋은 일이냔 말이야. 늙어빠진 이 몸뚱이를 움직이는 것도 관절의 한마디 한마디가 삐걱거리며 소리를 내지르는 것도 없는, 생각마저 둔해져 멍하니 있어야만 하는 우리와 달리 얼마나 좋냔 말이야. 그러니까 젊음은 좋은 것이지, 웃고 뛰고 울었다가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 있다는 게. 죽음보다 삶이 더 가깝고 아직 살 날보다 살아갈 시간이 많다는 게. 즐기게 젊은이, 아직 시간은 많다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한 발 한 발 우직하게 옮기기만 한다면. 시간은 아직 많다네 젊은이. 앞으로의 세상은 자네들 것 아니겠나? 많은 시련과 고난과 슬픔이 있겠지만 두려울게 뭐 있나? 시간은 자네들 편일세"

"젊음이 뭐가 좋습니까. 당신네들처럼 돈만 많이 있다면 우리들보다 신나게 세상을 살 텐데 말입니다. 취직될까 결혼은 해야 할까 집은 구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 잘리지는 않을까. 젊음은 아무짝에 쓸모없어요, 알았어요? 세상은 젊음 따위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니까요. 돈만 있어봐요, 절망에 떨어질 일도, 떨어지더라도 우리들보다 손쉽게 다시 올라갈걸요? 젊어서 고생은 무슨... 엿이나 처먹으라고 그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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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

그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땅바닥이 가까워 옴으로써 그에게 내 생각을 전한다. 허리를 굽히는 각도에 따라 그의 마음이 흡족하게 바뀔 것이다. 허벅지에 붙인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난 잠시간 그가 나를 보며 자위할 수 있도록 허리를 굽힌 채 멈추었다. 자존심도 구부러져 땅으로 머리처럼 처박힌다. 굴욕감과 자존심은 반비례한다. 그리고 내 인사에 그의 흡족함은 미친 듯이 하늘을 향해 치솟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

그가 내 어깨를 두들겼다. 그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고 나서야 굽혔던 허리를 폈다. 뻐근한 통증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온다. 굴욕적인 감사는 그의 거만한 배려로 끝이 났다. 빌어먹을 일은 이렇게 간단히 정리가 되었다. 나 혼자 고개를 숙임으로써, 우리를 짓밟은 그에게 굴욕적인 감사를 함으로써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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