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란 지독한 후유증을 남겼다. 비극과도 같은 후유증은 날 천천히 좀먹어 들어가고 있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목을 옥죄는 듯한 고통은 실제로 날 죽이는 것만 같았다. 아찔해져 가는 심장의 통증들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건 아마 네가 남기고 간 마지막 저주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너에게 준 상처만큼 네가 나에게 주는 저주라고. 날 천천히 죽여가는 아주 고통스러운 저주라고.
이 고통스러운 후유증을 견뎌내고 잠에 들 때쯤이면, 지쳐 쓰러져, 더 이상 네가 남긴 저주와 같은 고통을 잊어버리고 잠에 들 때면. 난 드디어 네 얼굴을 또렷이 떠올릴 수 있었다. 떠나버린 네가, 기억해내려 애쓰고 심장을 억죄는 고통 속에서 너를 잊으려 할 때에도, 흐릿한 잔상처럼 남아있던 네 얼굴이 잠들 때에서야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건 마치 나에게 내리는 마지막 악몽과도 같았다. 눈물을 흘리며 떠올랐던 네 얼굴은 아침이 되면 다시 흐려질 것을 알았기에.
넌 나에게 지독한 후유증만을 남기고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다시는 볼 수 없음에 나날이 흐려져가는 네 얼굴이 난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 후유증은 내가 죽기 전까지 계속 날 괴롭힐 것만 같았다.
아침이 밝아 눈을 뜨면 그는 결정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뜨거운 불길에 자신을 밀어 넣는 고통을, 묵묵히 받아들여야만 했을 것이다. 그는 굳은살 베긴 손으로, 미싱사들을 다독이던 손으로 불길 속을 뛰며 소리를 질렀다. 기계가 아니라던 그의 외침은 타들어가는 그의 육신에서 평화시장을 가득 메웠다. 밤을 새워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읽어나가며, 눈을 뜨면 고사리 손으로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위하여. 그는 그렇게 자신을 고난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하루 16시간의 고된 노동을 겪어가면서도, 배고픔을, 굶주린 배를 움켜쥐어야만 했던,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은 없었다. 자기 몸집 불리기에 바빴던 돼지들에게, 빨갱이가 되어버린 그의 선택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자신의 몸을 불태워가며 노동자들의 인권을 혼자 짊어지며. 그는 그렇게 배를 굶주린 채 불길에 몸을 던졌다. 그는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야만 했다. 마음의 고향으로.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죽이고,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안 될 나약한 생명들을 위해, 그는 외치었다. 불타는 심신으로 그는 외치었다.
예로부터 동족을 죽인다는 건 크나큰 금기였고, 시대가 흐른 지금까지도 그건 금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 그리고 살인. 여기서는 살인이라는 인간에 대한 초점보다는 동족 살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동물계 척삭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사람속의 사람, 흔히 호모 사피엔스라 불리는 동물이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말이지요.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는 많은 것들의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단순히 신진대사를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한 포식 활동부터, 비를 피하고 추위에 맞서기 위한 파괴행위, 번식을 위해 하는 모든 치장에 따른 쓸데없는 가공 행위까지. 그 무엇하나 동족을 제외한 생물체들의 희생을 강요해왔습니다. 자-,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당신이 행하는 모든 포식 활동에 있어서 죄책감을 느끼고 계십니까? 글쎄요. 혹자는 동물 보호단체 따위를 행하고 있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곤 합니다만 그게 우리의 금기와 똑같은 수준으로 느껴지십니까?
자, 한번 우리를 동물이라 봅시다. 영장류와 분화되어 사람과에 속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되기까지, 우리는. 고릴라와 같은 영장류와 다를 바 없는 동물로 본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릴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죽음을, 그들에 대한 살해 행위를 우리는 금기라고 여기곤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금기를 왜 그들에게 적용시킬 수 없는 걸까요? 우리 종족이 살아남기 위해 남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포식 행위, 그로 인해 당연시되는 모든 감정들로 배제되는 걸까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왜 동족 살해라는 그 행위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까요? 금기라는 명칭까지 붙여가며 처벌하고 그들의 행위를 낙인찍는 것일까요. 사실 동물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동족을 죽인다는 행위 자체도 포식 활동을 하기 위해서 이뤄지는 작은 일들 중에 하나가 아닐까요.
자-, 우리는 서로 살해하는 행위에 대해 고찰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땅위에 존재하는 동물들 중 하나로써 우리의 생명은 사실 그리 고귀한 것이 아닐 거란 생각인 것이지요. 거기서부터 우리들은 생각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생존을 하는 것에 있어서 자신의 안위만큼 중요한 것이란 없습니다. 여러분, 죽이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 마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금기라 이름 붙여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든 행위들에 대해 옥죄는 사슬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 사슬을 풀어내고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금기를 깨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느 살인자의 연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