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흥미로운 점이라면, 그건 아마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통한 고찰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나의 생각이란 수많은 의견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커다란 찰흙과 같은 것이라서, 뭉치고 섞여 회색빛으로만 보일 수도 있다. 마치 내가 가진 딱 하나의 생각인 것처럼. 이건 약간의 오만이기도 해서 나의 생각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것이란 착각에서 발로 된 것이기도 하다. 다시 뒤섞인 찰흙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면, 이 찰흙은 회색빛의 단색으로만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고 분리하다 보면 사실 이것은 여러 가지 생각의 복합체라는 걸 알 수 있다. 나의 의견은 나 혼자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글이 나의 의지와 생각을 벗어난 채 써 내려가질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하는 생각과 원하는 방향이 아닐 것일진대, 또 웃기게도 그 이상한 방향의 이야기도 써 내려가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글을 한참 내 의지 같은, 혹은 내 의지 같지 않은 글을 다 써 내려가고 난 뒤에야 한 가지 깨닫게 된다. 사실 이 글의 의지와 생각도 사실 뒤섞여 알아볼 수 없던 찰흙 덩어리였단 걸. 보이지 않았을 뿐 내 안에 있던 생각 중 하나라는 걸.
이 과정 중에서 느껴지는 그 묘한 생각은 날 불편하게 만들곤 한다. 상충되는 두 가지의 생각은 어떤 관점에서 내가 행동해야 하는지 결정을 촉구하곤 하는데, 그것은 사실 답을 내릴 수도 내려서도 안 되는 문제가 많은 것이다. 사형과 복지, 신과 인간, 선과 악 그따위 것들 말이다. 그래서 간혹 이 상충되는 생각과 감정을 서로 충돌하게 하곤 한다. 글을 씀으로써 글을 쓰고 난 뒤에야, 나도 몰랐던 그 생각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사실 어린아이 장난 같은 내 글들은 누군가에게 읽히기보단 내 생각을 정리하는 창구와 같은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내 생각을 공유(혹은 강요라고 할 수도 있다)함으로써 내가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이쪽과 저쪽, 좌와 우의 어느 쪽에서도 받아들여지고자 하는 몸부림인 것이다. 사실 이런 태도는 양쪽 모두에게 지탄받을 테지만.
불 꺼진 복도를 걷는다. 끼익-. 오래된 나무 바닥이 비명을 내지른다. 서서히 식어가는 태양이 붉은 노을을 만든다. 타박-타박. 발걸음 홀로 적막한 소음을 만들어낸다. 창밖에서 붉은 노을이 날아든다. 저 멀리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인다. 빛을 삼켜버려 새까만 어둠의 모습으로. 교실 문 앞에 다다랐다. 뒤틀린 나무 문이 신경을 갉아먹는 소음을 만들며 열리었다. 교실은 그때의 그 모습으로 그때의 그 향을 머금은 채 머물러 있다. 난 흐릿한 기억 속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낙서 가득한 책상, 기억 속에선 선명한 낙서들이 여기선 흐려져 있다. 먼지를 손으로 대충 털어내자, 그 흐릿한 낙서 몇 개가 몸을 들어냈다
우리 언제까지나.
네가 새긴 그 낙서는 이제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말이 되었다. 넌 언제고 어느 때고 어느 순간이고 그때처럼 이곳에서 머물러 있겠지만, 더 이상은 널 볼 수 없게 되었다. 붉은 노을이 검게 물들어 갔다. 어둠은 금세 교실을 뒤덮었다. 검은 노을 속으로 사라진 너의 모습은, 이제 흐릿한 기억이 되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것만 같다. 이렇게 무너져가는 우리의 추억 속에서 나의 시간만 흐르고 있다.
비 오는 밤. 우울한 기분. 우울한 노래. 추적추적 흘러내리는 빗소리. 함께 흐르는 음악소리. 떨어져 내리는 달빛. 가리어진 구름.
그 사이로 부서져내리는 별빛. 가라앉은 목소리. 느리게 움직이는 몸짓. 멀리서 들려오는 강아지가 짖는 소리. 슬피 우는 고양이의 울음소리.
순간 세상을 파랗게 물들인 번개. 같이 내리치는 천둥. 노란 가로등불.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 두근거리는 심장. 떨어지는 눈물.
입술로 스며드는 눈물. 흘러나가는 기분. 점점 커져가는 우울함. 그와 함께 깨닫게 되는 무력감.
꺼지지 않는 불안감. 차오르는 기대감. 지나가는 바람소리. 흔들리는 나뭇잎. 날아가는 새 한 마리. 춤을 추는 나비 한 마리.
귀를 간질이는 모기 한 마리. 불빛을 향해 날아가는 나방 한 마리. 떨어지는 불빛. 침대로 돌아가 뉘인 몸. 스르륵 스치는 이불.
몸 위로 내리 앉는 우울. 그 안에 스며드는 몸. 토해내지는 울음. 커져가는 소리. 젖어가는 베갯잇.
덮은 이불 위로 짓누르는 빗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