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소식을 들었다, 너의. 난간에 올라 담배를 물었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이 몸을 적신다. 저 밑의 사람들은 개미처럼 재빨리 걸음을 옮긴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해 이리저리 걸음을 재촉한다. 우산을 꺼내 쓰고 가방과 옷으로 머리를 가린다. 누군가는 그늘 밑으로 몸을 숨기고 또 몇몇 사람은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긴다. 카악-하는 소리를 내며 입에 가래를 머금는다. 천천히 밑을 조준하고 퉤- 내뱉는다. 빗방울에 섞여 침이 떨어져 내린다. 땅으로, 누군가의 머리 위로, 또는 누군가의 우산으로, 누군가의 가방 위로.
침을 맞지 않은 자들과 맞은 자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떨어지는 빗방울 속에서도, 그 무수히 많은 빗방울 속에서도 침을 맞은 사람의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들의 노력은 무엇이 있었을까. 아니 맞지 않은 그들은 무슨 노력이라도 해서 피하기라도 한 것일까. 침을 피한 이가 합격이라 한다면 그에겐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내가 하는 행위가 저 위의 누군가가 하는 행위와 다를 바는 또 무엇이란 말일까. 합격한 너의 노력과 나의 노력이 무엇이 그리 차이가 난 걸까.
담배를 난간 밖으로 던졌다.
너를 갈망한다. 사막에 오아시스를 찾듯, 목마른 이들이 비 한 방울을 기다리 듯. 난 너를 갈망한다. 그것은 어찌 보면 끊임없는 갈증과 같았다. 절대 채워지지 않는, 아니 정확히는 채워질 수 없는 그런.
넌 나에게 다가올 리 없는 파랑새였기에, 나에게 희망이나 행복 따위는 다가올 리 없었다. 그건 마치 끊임없는 수렁으로 날 밀어 넣는 행위와 같았음에도, 난 끊임없이 그 나락으로 내 몸을 던져 넣었다. 그것은 일종의 내 마음에 대한 자살과 같았다. 스스로 내리는 마음의 사형선고라 할 수 있다. 널 가질 수 없음에 널 갈망하는 게 끊임없는 죽음의 고통과 같았다.
나의 갈망은 나 자신에게 독이었다. 그럼에도 끊임없는 감정의 갈증에 난 그 독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죽음으로 나락으로 감정이 죽어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때까지, 내가 갈증을 느낄 수 없도록. 참으로 멍청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절대 해결될 일이 없는 갈증임을 알면서도, 너를 갖기 전까진 없어지지 않을 갈망이며 갈증임을 알면서도.
난 절망과도 같은 갈증이 없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갈망을 들이켰다. 최대한 빨리 내가 죽어 스러질 수 있도록. 내가 갈증을 느끼지 않는 것은 스러질 때뿐이란 걸 알기에.
여름밤, 달빛을 친구 삼아 혼잣말을 털어놓았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할 얘기들을.
난 어릴 적 많은 고민과 고통을 가진 아이였다. 그건 때로는 분노 발작처럼, 다른 이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내 폭탄과도 같은 성질을 견뎌내어야만 했다는 것과 동일했다. 특히 그건 내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 더 심한 트라우마처럼 심어지기에 충분했다.
난 사회의 피해자이며 가해자였다. 학교에서 당한 모든 폭력은 고스란히 내면 깊숙한 곳에 상처를 만들었다. 절대 아물리 없는 흉터처럼, 곪고 곪아 썩어버리는 그런 흉터는 고름을 잔뜩 머금은 채 날 죽여가고 있었다. 웃기게도 이런 상처는 나를 가해하는 가해자들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나에게 있어서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허들과 같았다. 내가 아무리 살려달라고 발버둥 치고 그들에게 애원해도, 그들은 가차 없이 날 벼랑 끝으로 밀어 넣었다. 마치 즐거운 유희처럼, 난 그들의 장난감과 같았다. 언제 어느 때고 부서져도 문제없는 싸구려 장난감. 그런 그들에게 난 반항할 수 없었다. 반항은 용기 있는 자의 행동이었으니까.
나는 모든 폭력의 분출구를 가족에게로 돌렸다. 그들에게는 단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난 그들에겐 피해자였으나, 가족에겐 가해자일 뿐이었다. 그들의 가혹성이 정도를 더해갈수록, 반대급부로 가족에게 가해지는 피해망상은 한없이 치솟았다. 그것은 내가 아직 이 사회를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지만, 가족에겐 끊임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계속되는 자살시도에 가족들은 지쳐갔다. 내 안에 깊이 가라앉은 해결되지 않는 분노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파괴했다. 고통의 나날이 지속되었다. 그들과 마주칠 일이 없게 된 뒤에도 그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날 옥죄었다. 정신병동에 갇히기를 반복해가는 와중에서야, 난 아주 간신히 내 분노를 돌릴 수 있었다. 그것은 가족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향하지 않는 아주 이상적인 형태로, 나에게 나타났다.
여름밤, 정신병동에서 퇴원한 오늘 밤, 달빛을 친구 삼아 혼잣말을 털어놓는다. 누군가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를.
"다 죽여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