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에 따른 다양한 관점과 생각들이 존재한다. 그 생각들은 개인의 성향과 교육 환경, 그리고 그들이 속한 그룹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 그룹들이란 결국 속한 사람들의 위치와 이익 관계를 대변하게 된다. 사람들은 결국 세상 안의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자신이 속한 그룹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로써 귀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자신이 속하지 않은 그룹의 관점에서 생각을 전개할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는 것이지, 정확하게 그들과 같은 관점에서 생각을 전개하기란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그들의 생각을 난 오롯이 이해할 수 있다는 자만과 위선일 수 있다.

한 남성이 있다, 그는 자신이 페미니스트이길 자처한다. 허나 그가 완벽히, 그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과 동일한 차별과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 그걸 몸으로 체득하면서 그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는 남성이고 그가 여성으로써 느낀 부당함을 자신의 몸으로 체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페미니스트적 사고를 견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해야 옳다. 그는 남성이라는 그룹에서 여성이라는 그룹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해야한다는 것이다.

다른 경우를 보자면,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적인 남성과 여성들은 LGBT를 대변할 수 없다. 그들의 생각과 그들이 그러한 결정을 내려 삶을 살아가는 자세까지 대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어찌보면 자신이 겪을 수 없는 모든 경험을 자신이 겪은 것이라 오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입장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서로를 배척해서는 안된다.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지만 페미니스트적 견해를 견지해야한다. 일반적으로 LGBT에 대하여 그들의 삶에 대하여 우리는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그룹의 서로간에 대변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서로 다른 그룹들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은 계속 관철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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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그랬습니다."

"후우-"

노려보던걸 멈춘다. 내가 노려본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이미 사람을 죽여버린 녀석이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녀석을 죽여버릴 수도 없는 일이고, 그 녀석에게 무슨 사과를 받아낼 이유도 없다. 나는 그저 말 잘 듣는 로봇처럼, 혹은 마음이 없어져버린 사이코패스처럼,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감정을 억누르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말자. 이미 죽어버린 사람을, 시체를, 고깃덩어리를 의식하지 말자. 감정의 찌꺼기는 뇌 속 한 공간에 묻어두자. 묵직한 이성 덩어리로 감정을 억눌러 흘러나오지 않게. 그렇게 맘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시금 바라본 사건 현장, 붉은 바닥. 흘러내리는 붉은 핏방울. 떨어지는 핏방울 속 걸려있는 고깃덩이. 혹은 사람이었던 그것. 푸줏간을 연상시키는 붉은 불빛. 사람마저 붉게 변해 보이는 그런 공간이다. 아무도 말이 없다. 모든 사람들은 이 상황에 뭐라 말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는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할 일을 깨달은 막내가 녀석의 손목을 잡아끈다. 찰칵-거리는 소리, 질척 거리는 발소리. 막내와 녀석이 사라졌다.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붉은 공간에서 홀로 검게 물들어 있는 기분이었다. 붉게 변한 물이 채워진 욕조에 다가간다. 이젠 익숙해져 버린 비릿한 냄새. 욕조 속에서 손이라도 뻗어 나올 것만 같다.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식은땀이 흐르는 손을 바지에 쓱쓱 문질러 닦았다. 몸을 숙여 땅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머리카락 한올을 집어 들었다.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 끝, 그 끝 부분에 거칠게 뜯겨 나간 피부 조각이 들러붙어있다.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눈을 돌릴 수도 없다. 끝까지 보고 파악하고 분석 해내야한다. 냉철해져야 한다. 하지만... 갈수록 그러기가 힘들다. 바지 주머니에서 증거품 수집용 비닐백을 꺼내어 넣는다. 피부 조각이 붙은 머리카락이 휑한 비닐봉지에 담긴다.

못 해 먹겠다. 속이 메슥거린다. 나는 대충 둘러보다가 방을 나왔다. 잠깐 머리라도 식히자. 더 보고 있자니 묵직한 이성 덩어리가 쩌적 소리를 내며 금이 가고만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이성을 짖눌러 보아도 난 사람이다. 그들과 똑같지 않은. 매달, 혹은 매주, 그것도 지나치면 매일. 나는 지옥과 일상을 오가고 있다. 흔히 악마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과 매일 마주치고 그들의 말을 듣고, 일반인들이 오열하는 걸 견뎌야 한다. 맨 정신으로. 술의 힘을 빌릴 수도 없이. 그들과 매일 마주하며 매시간 환희와 거짓에 찬 목소리와 그들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피 흘리는 오열을 들어야 한다. 그들의 어디부터가 거짓이고 진실인지, 그들의 말 틈 어딘가에 빈틈이 없는지 찾아야 한다. 눈물 흘리는 피해자들과 마주하며. 피해가족의 오열과 절규를 악마 놈들의 거짓과 진실처럼 냉정하게 받아야 한다. 익숙해지면 안 된다. 나약해지면 안 된다. 흐트러지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냉철해야 한다. 하지만 난 사람이다. 난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일 이런 것들과 마주하며 살아온 내 선배들이 존경스럽다. 지금의 난 하루하루 깨어져 가고 있는데...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붉은 그곳으로 들어간다. 검은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만 같은 그곳으로 선뜻 발을 내밀기가 힘들다. 수많은 생각이 교차된다. 아까 봤던 그 붉은 공간이 다시 눈 앞에 펼쳐진다. 매달려있던 시체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듯이 움직거린다. 욕조에 담긴 붉은 물에서 손들이 뛰쳐나온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수많은 고깃덩어리가 하나가 되어 일어선다. 눈을 질끈 감는다. 어둠에 감싸여 모든 환상이 사라진다. 잠시 숨을 고른다. 거칠어진 숨소리, 심장이 달음박친다.

"에이 씨발"

재킷 안주머니에 들어있던 사표를 꺼내 땅에 아무렇게나 내던진다. 휴대폰 배터리를 뽑아 꺼버린다. 어디 사람 없는 곳으로 가버리자. 일상으로, 지옥과 마주칠 일이 없는 곳으로.

"씨이발..."

...
....
.....
......


다시 사표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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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 별다른 느낌은 없었어요. 그런 사람인 줄 몰랐으니까요. 그저 처음엔 그냥 아~사람이 탔네 하는 정도였죠.

남 : 글쎄요. 그때는 별다른 생각 없었습니다. 뭔가 불안해 보이긴 했지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여 : 그런데 그때부터 그의 행동이 이상했죠.

남 : 그런데 그때부터 그년의 행동이 이상했습니다.

"그때요?"

여 : 예. 엘리베이터가 멈춘 뒤부터 그는 지나치게 히스테릭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남 : 짜증 났습니다. 며칠 전부터 계속된 야근에, 상사의 스트레스. 거기에 오늘은 잠도 못 자고 나온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곤 해도 남에게 피해가 가는 그런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여 : 머리를 헝클었어요. 한참을 쥐어뜯다가 거울을 보며 뭐라고 중얼거리더군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남 : 그냥 이 좆같은 상황에 욕을 했을 뿐입니다. 별다른 의미 있는 말은 아니었어요.

여 : 죽여 버린다고 했어요. 분명히 들었다고요.

남 : 엘리베이터가 멈췄을 때 까진 괜찮았어요. 그 뒤가 문제였죠. 그 뒤가...

여 : 엘리베이터가 멈추니까 본색이 드러난 거라니까요?

"멈춘 뒤에요...?"

남 : 불이 꺼진 시점부터요. 엘리베이터는 멈춰있지 덜컹거리는 소리는 계속 들리지. 그런데 갑자기 불이 꺼진 겁니다.

여 : 불이 꺼졌어요. 갑자기! 타악-하고 꺼진 불 틈으로 그놈이랑 눈이 마주쳤어요.

남 : 눈이 마주쳤냐고요? 글쎄요. 그런 것까지 기억할 정신이 아니었어요. 무엇보다 야근 때문에 졸려 죽을 것만 같았으니까요.

여 : 그놈 눈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어요. 마치 공포영화나, 삼류 영화에 나오는 강간범들 같은 그런 눈이었어요!

남 : 아니 그러니까 씨발! 난 가만히 있었다고요. 구석에 박힌 채로! 그런데 그 년이 갑자기 소리치더라니까요!

여 : 가까이 오지 말라고, 분명 난 경고했어요. 수십 번은 했어요!

남 : 가까이 갔냐고요? 하-씨발. 난 가까이 안 간다고 그저 손만 뻗어서 흔들었어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고요.

여 : 예. 찔렀어요. 그놈이 손을 뻗고 가까이 다가오길래, 먼저 찔렀어요!

"찔린 곳은 괜찮습니까?"

남 : 하... 괜찮을 거 같아요? 시벌.

여 : 그런 놈은 죽어버렸어야 돼요. 그런 상황을 틈타서, 여자를 어떻게 해봐야겠다는 개새끼들은.

남 : 시펄. 그년 고소할 겁니다. 개 같은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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