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감정을 도구로 삼지 않았나. 그 헛된 감정과 거짓된 상심을 도구 삼아 거짓된 글을 적고 있진 않았나. 가면이라 생각했던 게 내 본 얼굴이라면, 본모습이라 생각했던 게 가면이 되는 것인가. 아니, 두꺼운 낯짝을 뒤집어 거죽을 떨궈낸다면 그건 내 얼굴인가. 피를 땅에 뚝뚝 떨궈내며 비곗덩이 출렁이는 몸뚱이는 언제나 거짓을 고하고만 있는가. 나에겐 결국 거짓만 도구로 남아 감정을 속이고만 있는 게 아닌가.
"'탕'은 제 강아지예요. 아니, 가족이에요"
조그만 소년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는 왠지 모르게 슬픔이 가득 묻어있어서 차마 뭐라고 대꾸하지 못했다. 나는 옛날부터 강아지가 자신의 가족이라느니, 자신의 분신이라느니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년의 절박함에는 쉽사리 그렇게 모질게 말할 수 없었다. 소년은 조그마한 손을 주머니에 넣어 뒤적거리더니 동전 몇 개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는 커다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릴 적 보았던 '장화 신은 고양이'와 같은 모습이라 눈을 돌리기가 어렵다. 내 표정을 본 소년은 잔뜩 얼굴을 구기더니 주머니에서 온갖 잡동사니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유희왕 카드도 올려놓고, 주사위, 작은 배지, 오락실에서 주워온 듯한 장난감 몇 개. 조막만 한 손이 쉼 없이 움직인다. 소년은 그렇게 주머니에 모든 걸 꺼내놓더니 다시 입술을 옴싹 거렸다. 말을 하고 싶은데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찾아... 주세요"
"꼬마야... 그게..."
"찾아... 달라고요"
"그러니까..."
하아-. 어떻게 말을 해야 하지? 차마 찾을 수 없다고 말을 할 수가 없다. 나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소년은 만족했다는 듯이 고개를 꾸벅인다. 나는 그렇게 감사인사를 하던 소년이 몸을 돌려 나가기 전에 멈춰 세웠다.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잡동사니를 쓸어 담아 소년에게 건네어주고, 그중에서 아주 작은 배지 하나만을 손에 들었다. 소년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눈높이를 맞춘다.
"수고비는 이걸로 할게. 그러니 집에 가서 기다릴래?"
"... 예!"
소년은 눈물을 손등으로 닦더니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몸을 돌려 집으로 뛰어간다. 나는 뛰어가는 소년을 보며 머리를 긁적인다. 하아-이걸 어쩐다? 몸을 돌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끼잉-끼잉-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간혹 멍멍거리는 소리도 시끄럽게 들려온다. 나는 바닥에 있던 파이프 하나를 들어 벽에 휘두른다. 까앙-하는 소리와 함께 일순간 시끄럽던 소리가 사라진다. 나는 방 한쪽 구석으로 걸어가 바닥에 엎어져 있는 개를 바라본다. 발끝으로 밀어 고개를 돌리자 목걸이가 드러난다. '탕'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진 은빛 목걸이. 그걸 보고 있으려니 소년의 그 눈망울이 계속 떠오른다. 하아- 이걸 어쩐다.
"시발. 지네 부모가 와서 팔아넘겼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미 뒈져버렸다고 할 수 도 없고...
손에 들고 있던 배지를 엄지로 튕긴다. 타앙~탕~소리를 내며 요란스럽게 튕기더니 하수구로 쓱 빨려 들어가 버린다.
"이걸 어째...?"
모두들 미친 거라 생각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물론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은 항상 절 밖으로 이끌고 맙니다. 코트에 몸을 감싸고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그들의 놀라는 표정을 볼 때면, 터질 것만 같은 욕구가 치솟아 오릅니다. 해방감, 그리고 자유. 맨 몸에 닿아 흩어지는 차가운 바람 살결을 스치고 땅에 떨어져 내리는 옷가지. 아아~! 발끝부터 저릿저릿 올라오는 이 흥분과 해방감! 당신들은 모를 겁니다, 이 황홀한 느낌을! 겪어보지 않은 당신들은 알 수 없겠지요, 한번 경험해 본다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겁니다. 사회 규범 도덕 따윈 다 잊어버리고 태초의 모습으로!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