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불편한 이야기-두달.'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18.06.06 줄거리.
  2. 2018.06.06 쓰는 일.
  3. 2018.06.06 조심.
  4. 2018.06.06 고여있다.
  5. 2018.06.06 심연.
  6. 2018.06.06 보다.
  7. 2018.06.06 각자.
  8. 2018.06.06 순위.

Scene 1

불 꺼진 무대, 중앙에 내려오는 핀 조명

핀 조명 안에 놓인 의자로 사내가 걸어온다. 그는 의자에 앉기 전 헛기침을 하곤 관객들을 둘러본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의자에 걸터앉는다. 끼익-하는 소리. 다리를 꼬고 턱을 매만진다.

"많이 있은 일이죠, 뭐- 사실 살면서 한 번쯤은 밝혀질 거라 생각했어요. 어쩔 수 없잖아요? 평생을 숨기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사내는 웃는 듯 우는 듯한 미소를 짓는다. 머리를 긁적이고 고개를 숙인다.

조명이 꺼진다.

Scene 2

비어있는 무대, 무대 한쪽 끝에서 사내가 손에 술병을 든 채 걸어 나온다. 무대 중앙, 다시 내려오는 핀 조명. 사내는 술을 들이켜고는 관객석을 둘러본다. 수염이 더 자란 상태, 사내는 입에 묻은 술을 대충 문질러 닦는다.

"그게 큰 잘못은 아니잖아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까? 대답해봐요! 내가 당신들한테 피해를 주냐고!"

사내는 관객석을 향해 술병을 들이대며 소리친다. 관객석의 조명이 노란색으로 변경. 사내는 숨을 몰아쉬며 관객들을 바라본다. 술을 한 모금 더 마시고 관객석에 다가선다.

"내가 역겹습니까? 더러워요? 내가 괴물처럼 보입니까? 대답해보세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사내가 물어보는 관객에게 빨간색 핀 조명. 무대의 조명이 꺼진다.

Scene 3

무대 가운데 핀 조명이 천천히 들어온다. 사내는 조명 한가운데 쓰러져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성애자인 줄 알았던 둘은 서로를 만나 사랑을 나눴죠. 20년에 걸친 시간 동안"

사내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관객석에 빨간색 핀 조명이 하나 더 내려온다.

"제가 게이란 사실이 당신들에겐 혐오스럽겠죠"

관객석에 빨간색 핀 조명이 조금씩 늘어간다. 많은 자리에 빨간 핀 조명이 보인다.

사내는 관객을 둘러본다. 점점 늘어가는 빨간 핀 조명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인다. 무대 위 사내에게도 빨간 핀 조명이 떨어진다.

조명이 꺼진다.

Sence 4

탕-하는 총성과 함께 무대 중앙 핀 조명이 서서히 들어온다. 사내는 중앙에 쓰러져있다.

조명이 꺼진다.

'끄적끄적-. > 불편한 이야기-두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택.  (0) 2018.06.06
한 주.  (0) 2018.06.06
쓰는 일.  (0) 2018.06.06
조심.  (0) 2018.06.06
고여있다.  (0) 2018.06.06
Posted by Ralgo :

이름이 되어 불리지 못한 모든 것들에게.

이름이 없는 너희들에게 내가 이름을 붙여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알량한 동정심일 것이다. 만약 내가 너희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내 위선일 것이다. 너희는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채 아스라이 사라져 버렸지만, 너희의 존재는 누군가에겐 아픔이 되고 슬픔이 되고 흉터로 되어 남을 것이다.

너희가 사라진 일도, 너희를 사라지게 한 일도, 모두의 사정과 이해가 있을 것이다. 슬퍼말아라. 원망 말아라. 내 아무리 너희에게 말을 해보아도 그건 너희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외침은 그저 허공 속에 흩날려버릴 테니. 이렇게 글을 쓰는 일로 공허 속의 너희가, 이름이 되어 불리지 못한 너희가, 잠시라도 기억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끄적끄적-. > 불편한 이야기-두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주.  (0) 2018.06.06
줄거리.  (0) 2018.06.06
조심.  (0) 2018.06.06
고여있다.  (0) 2018.06.06
심연.  (0) 2018.06.06
Posted by Ralgo :

그는 어두운 방에 들어섰다. 빛 한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손에 들고 있던 후레시 주위만이 그의 시야가 되었다. 터벅하는 발소리에 후레시 주위로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는 터져 나오려는 기침을 애써 참아냈다. 폐 속에서 나오지 못한 먼지는 고통이 되어 그의 목을 긁었다. 숨을 애써 고르고 다시 발을 옮겼다.

오래된 선반. 먼지가 수북이 앉은 탁상시계. 물 대신 먼지가 담긴 물 잔. 언제 찍은 사진인지 모를 가족사진. 모든 것이 지나간 시간 속에 먼지에 파묻혔다. 그는 바닥의 먼지가 비산 하지 않게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뒤틀리고 갈라져버린 나무 바닥이 끽-하는 거친 파열음을 만들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린 채 탁상시계를 집어 들었다. 먼지를 털어냈다. 11시 48분, 시간은 아직 그때 그날에 멈춰있었다.

그는 잊을 수 없었다. 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그를 거친 감정의 격류에 밀어 넣곤 했다. 그는 시계를 내려놓고는 사진으로 손을 뻗었다. 이미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사진, 그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땀방울이 이마에 맺혔다 턱을 타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떨리는 손에 힘을 주어 사진을 들어 먼지를 닦아냈다. 아- 그래, 이 소녀였구나. 그는 사진 속 작은 소녀를 바라보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거친 빗소리, 몰아채는 바람, 저 멀리서 들려오던 총소리. 그는 그 날로 되돌아갔다. 탕-하는 소리에 옆에 있던 나무가 터져나간다. 숨을 제대로 내쉴 틈 없이 땅을 뒹굴었다. 돌과 나무들이 온몸을 두들기는 것 같았다. 공기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폐가 없어질 것만 같다. 근육은 고통을 내질렀다. 그는 그래도 몸을 움직였다. 살고 싶었다. 죽을 수 없었다. 몸을 되는대로 굴려 가시나무 수풀을 지났다.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이 곳이 나타났다. 지금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만 같은 오래된 나무집, 그는 집으로 들어섰다.

그는 소녀의 사진에서 눈을 돌려 그때의 자신을 쫓았다. 자신은 긴장했으며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총을 들어 방 한쪽으로 향했다. 오지 마, 오면 안 돼. 오지 마. 그는 소리쳤으나 기억 속의 자신은 천천히 이쪽을 향했다. 그리고 끼익-. 방 한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는 총을 돌려 갈겼다. 나무 벽이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비가 멎었다. 그리고 광기에 휩싸인 것만 같았던 그의 총질도 멈추었다. 그는 침을 삼키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엔 소녀가 쓰러져있다. 머리가 박살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소녀가, 뼛조각이 바닥에 굴러다닌다. 피가 바닥을 타고 점점 퍼져간다.

안돼, 안돼. 그는 기억 속의 자신에게 소리쳤다. 안돼 안돼... 얼굴을 알아볼 수 없던 소녀의 얼굴이 보인다. 지난 십여 년간 머릿속을 헤집던 얼굴 없는 소녀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소녀를 보며 계속해서 되뇌었다. 미안해, 미안해. 난 무서웠어. 미안해, 미안해 정말...

'끄적끄적-. > 불편한 이야기-두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줄거리.  (0) 2018.06.06
쓰는 일.  (0) 2018.06.06
고여있다.  (0) 2018.06.06
심연.  (0) 2018.06.06
보다.  (0) 2018.06.06
Posted by Ralgo :

비가 갠 다음 날, 집 앞에 고여있는 물웅덩이를 보곤 합니다. 흙과 뒤섞여 적당히 갈색빛을 띠는 구정물은 아지랑이를 피워내듯 이리저리 흙을 일렁거립니다. 그건 마치 살아있는 생명과도 같아서 이리저리 섞이고 흩어지고 뭉쳤다가 부서지곤 합니다. 침전물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해 맑은 물이 상층으로 올라오고 나면 바닥은 한없이 고요해집니다. 그리고 마치 다른 세상으로 연결해주는 터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가라앉은 흙을 뚫고 들어간다면 다른 세상이 확 펼쳐질 것만 같다고도 생각합니다. 나니야 연대기의 옷장이나 해리포터의 9와 3/4 플랫폼처럼. 이 곳을 뚫고 들어간다면 모험이 펼쳐질 거란 생각에 손을 넣어봅니다. 당연하게도 새로운 세상으로의 모험은 없습니다. 가라앉은 침전물이 이리저리 섞이고 흩어지고 뭉쳤다가 부서집니다. 마치 모험이 없는 이 곳의 인간군상처럼요.

'끄적끄적-. > 불편한 이야기-두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쓰는 일.  (0) 2018.06.06
조심.  (0) 2018.06.06
심연.  (0) 2018.06.06
보다.  (0) 2018.06.06
각자.  (0) 2018.06.06
Posted by Ralgo :

기분이 울적해 집을 나섰습니다. 간혹 가슴속 저 깊숙한 어딘가에서 훅 하고 무언가 치달아 오르곤 합니다. 집안의 퀘퀘한 곰팡이 냄새와 눅진한 공기는 몸에 들러붙는 것만 같습니다. 바다로 향했습니다. 저에게 바다는 일종의 쓰레기통이었습니다, 감정의 쓰레기통. 바닷바람을 맞으며 치밀어 오른 감정을 바다에 쏟아내면, 마치 저 바다의 끝, 빛이 한 줌 닿지 않은 심연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어둠이 더욱 깊어지고 빛이 점점 사라질수록 제 감정도 그렇게 저곳으로 빨려 들어가길. 저 바다의 깊은 곳으로 끊임없이 가라앉기를 바라면서요.

'끄적끄적-. > 불편한 이야기-두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심.  (0) 2018.06.06
고여있다.  (0) 2018.06.06
보다.  (0) 2018.06.06
각자.  (0) 2018.06.06
순위.  (0) 2018.06.06
Posted by Ralgo :

조금씩 기운이 없어진 너를 보고 있노라면 시간은 참 야속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와 지낸 지 십여 년의 시간 동안 넌 그저 나에게 사랑을 주기에 바빴다. 난 너의 머리를 쓰다듬고 너의 눈을 바라보았다. 조금씩 총기가 사라지는 네가, 이제 곧 나를 못 알아볼 것만 같아 두려웠다.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게 쓰라린 고통이었다. 나는 너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넌 지난한 고통을 견디고 있겠지. 너와 나의 시간이 다름에, 기필코 올 수밖에 없던 이별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푸석해진 털과 힘없이 흔드는 꼬리가 너와의 이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너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나를 보는 너의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넌 언제나 첫 만남 속에서 한없이 뛰어놀던 작은 아기 같았다. 너에게 고통을 참아내고 조금만 더 살아달라는 부탁을 하는 건, 그저 나의 이기심일 것이다. 텅 빈 집안을 바라보고 있는 고통을 견뎌야 할 내가 무서운, 그런 이기심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이기적인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다. 단 일 년이라도, 한 달이라도, 하루라도. 아니면 단 몇 시간만이라도 너의 눈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난 이기적일 것이다.

'끄적끄적-. > 불편한 이야기-두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심.  (0) 2018.06.06
고여있다.  (0) 2018.06.06
심연.  (0) 2018.06.06
각자.  (0) 2018.06.06
순위.  (0) 2018.06.06
Posted by Ralgo :

우리는 밤하늘을 이불 삼아 모닥불에 둘러앉았다. 각자 내어놓는 얘기는 시시껄렁한 사담이었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안도하고 있었다. 이런 얘기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해어지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중 한 녀석이 입을 열었다. 조금은 멀리 지금은 없어진 고향 얘기.

"제 고향은 완전 시골이라서요. 전기도 안 들어오고 그랬어요. 그때도 친구들이랑 이렇게 모닥불 피워놓고..."

그렇게 시작한 녀석은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던 표정 속에서 눈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녀석은 말을 할수록 점점 그곳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녀석이 말을 끝내고 잠시 우리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 시간이 흘렀다. 밤하늘이 무겁게 몸을 눌렀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던 모닥불이 서서히 불빛을 사그라트렸다.

우리 사이에 어둠이 가득 찼다. 말을 꺼냇던 녀석은 이윽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모닥불이 희망의 봉화였던 마냥. 녀석의 흐느낌은 쉽사리 전염되어서 모두들 고개를 무릎에 처박고 고통을 쏟아냈다. 다들 그렇게 참고 있던 불안을 어둠에 쏟아내었다. 어둠 속에서 서로 속에서 표정을 숨기고 소리를 숨긴 채 감정만이 요동쳤다.

난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옮겼다. 몇 개비 남지 않았던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담배 끝의 빨간 불빛이 뻑뻑 점멸한다. 세상이 멸망했다고 말한 날로부터 3개월, 우리들은 각자의 고통을 이겨내야 했다. 하지만 분명히 다들 지쳐갔다.

'끄적끄적-. > 불편한 이야기-두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심.  (0) 2018.06.06
고여있다.  (0) 2018.06.06
심연.  (0) 2018.06.06
보다.  (0) 2018.06.06
순위.  (0) 2018.06.06
Posted by Ralgo :

"빨리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

의사의 말에 사내는 고개를 떨궜다. 그는 연신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고 다리를 떨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던 눈에선 결국 눈물이 맺혔다. 사내는 결정할 수 없었다. 단어가, 글자가 말이 되지 못한 채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생각들 틈으로도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의사는 초조했다. 결정이 늦어질수록 확률은 떨어질 것이다. 의사도 사람이었기에 쉽사리 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게 의사의 심장을 짓눌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말을 해야 했다. 최소한 보호자의 작은 죄책감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보호자의 결정에 등을 떠밀어주기라도 해야 했다. 그게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우선순위를 고려하셔야 합니다"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이미 눈물로 뒤덮였다. 헝클어진 머리가 이리저리 삐쳐있다. 사내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흐느낀 탓에 꺽꺽 거리는 쇳소리가 먼저 터져 나왔다. 사내는 간신히 말을 꺼내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는 연신 몸을 들썩였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내의 결정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기 때문에 위로의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사내는 힘든 결정을 내렸다. 결혼한 지 십 년 만에 생긴 아이와 평생 사랑할 부인, 그리고 지금의 상황. 사내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부인이 얼마나 간절히 아이를 원했었는지 알면서도 결정을 해야만 했다. 사내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이제 곧 사그라질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사내는 듣지 못한 아이의 울음소리를 평생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끄적끄적-. > 불편한 이야기-두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심.  (0) 2018.06.06
고여있다.  (0) 2018.06.06
심연.  (0) 2018.06.06
보다.  (0) 2018.06.06
각자.  (0) 2018.06.06
Posted by Ral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