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얘길 왜 물어요? 벌써 우리만 나쁜 놈 됐는데. 하- 그러니까... 그래요, 그놈은 항상 튀었어요.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났다구요. 생긴 거요? 아- 물론 잘 생겼죠. 공부도 잘했구요. 심지어 운동도 잘하고. 선생님들이 딱 좋아하는 그런 범생, 학교 드라마에서나 나올 것 같은 그런 말끔한 이미지였으니까요. 저요? 그냥 평범하죠. 뭐- 대부분의 일반 학생이 그렇지 않은가요? 뛰어난 애들 몇몇과 노는 애들 몇몇, 그리고 저같이 평범한 애들 몇몇, 그리고 평범하지도 않은 지질한 애들 몇몇. 그렇다고 저희 반이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어요. 아- 진짜라니까요. 잘 들어봐요 진짜. 우리도 처음엔 그놈이랑 잘 지내려고 했다고요.

그러니까, 박성하. 그놈이 처음 전학 왔을 땐 모두의 관심이 그놈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죠. 왜 그렇잖아요? 잘생긴 녀석이 전학 오면 여자들은 관심 가지고, 남자들은 경계하고. 여자가 전학 온 다면 반대겠지만. 어쨌든 그놈은 전학 오자마자 학교에서 유명해졌어요. 많은 관심을 받았죠. 예? 아- 이때는 좋은 관심이었어요. 아- 진짜. 얘기 끊지 말고 들어봐요 좀. 저랑 친한 몇 명 애들은 단지 아- 잘생겼네 하고 넘어갔어요. 뭐 씨발 별 수 있어요? 잘생긴 놈은 잘생긴 거지.

그런데 말이죠? 그 새끼가 하은이랑 일이 생긴 거죠. 뭐- 흔한 스토리 같지 않아요? 아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당신네들이 좋아하는 그런 가십거리, 뭐 이건 단순 가십거리가 아니라 사실이었지만요. 그래요 하은이는 임신했어요. 그 새끼는 나 몰라라-. 뭐 솔직히 나라도 시발. 갑자기 임신은 했지 애는 안땐다고 그러지. 그래도 성하 이 새끼는 도가 지나쳤어요. 하은이를 걸레 취급하기 시작한 거죠. 내막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최대한 그런 게 아니라고 무마하기 바빴고요. 그렇지만 선생들과 주위의 시선은 그렇지 않았어요. 하은이만 쓰레기가 돼버린 거였죠. 아무한테나 몸을 대주는 창녀, 그렇게 되어버렸어요. 문제는 하은이가 상당히 여린 아이였단 거죠. 우리가 그 녀석을 멀리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에요.

하은이가 자살한 그때부터.

아- 예. 걔 맞아요. 사진은 또 어디서 구했어요?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 이쁘게 생겼죠? 그 뒷얘기요? 계속해야 돼요? 아- 그만하자고요. 더 들어서 어디에 쓸 건데요. 진짜... 하.

성하 그놈, 장례식장에도 안 왔어요. 오지 못하는 것 까진 이해할 수 있었죠. 씨발. 하은이 부모님한테 맞아 죽을게 뻔한데 미쳤다고 오겠어요? 그러고도 기자 맞아요? 여튼간에 우리는 그 녀석이 최소한의 죄책감을 가지길 바랬어요. 죄책감? 개나 주라 그래요. 그 새끼 하은이 죽고도 여행 다니고 여자 만나고 다녔어요.

우린 그 녀석을 왕따 시키기로 마음먹었죠. 아- 그래요 그래. 우리가 뉴스에 나온 게 그것 때문이었으니까. 좀 도가 지나친 것도 있었어요.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던 게 점점 일이 커졌으니까요. 심하다고 생각했을 땐 이미 멈출 수 없이 굴러가고 있었어요. 남자 녀석들의 집단 린치는 날이 갈수록 거칠어져 갔죠. 멈추는 건 불가능했어요. 멈춘 순간 이미 녀석은 병신이 되어 있었으니까.

뉴스엔 이렇게 나왔죠. 교내 왕따 사건으로 인한 학생 한 명 중태. 우리들은 쓰레기가 된 거죠. 뭐-. 이제 와서 보면 틀린 것도 아니겠지만. 씨발. 저기요? 기자 아저씨. 그쪽도 우리들만 나쁘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우리들만 죄를 지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죠?

어째서 오리들만 나쁘다고만 생각해요? 백조가 씨발놈일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요? 우리말이죠-. 그러니까 오리에요 씨팔. 이쁜 백조 괴롭힌 오리.

개쓰레기 같은 백조를 왕따 시킨 멍청한 오리. 단지 그것뿐인 이야기예요.

씨발. 저 갈게요. 다시 찾아오지 마세요. 이 얘기 더 하고 싶지도 않으니까요. 아 그리고 얘기 값으로 사식 좀 넣어주고 가요. 맛있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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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

오색찬란한 눈이 부신 세상- 눈이 부시다 못해 아프기까지 한 화려한 색상들. 그 속에 걸어가는 사람들,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머리. 똑같은 행동을 하며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특이하지만 그 누구도 특이하지 않다. 평범하지만 그 누구도 평범하지 않다. 세상은 똑같이-. 하나같이 똑같은 얼굴과 모습들로 세상을 얘기하며 이렇게 말한다.

'아- 이 세상은 너무나도 평등해. 아름다운 세상이야'

지랄하지 마! 거짓말하지 마!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며 똑같은 말을 내뱉는 듯 하지만,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 내가 누구인지, 남이 누구인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죽어도 나와 같은 사람은 내 바로 옆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 사람이 죽어도 또 똑같은 사람이 그 옆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 아무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임으로써 존재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 나라는 존재의 존귀함은 만인이 똑같음에 하나의 평범한 물체로 전락한다. 그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똑같은 모양의 자갈들과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을 한다. 난 특별해- 난 존엄한 존재야. 아무도 날 대신할 수 없어.

'웃기지 마. 넌 나와 똑같고, 난 너와 똑같다. 아무도 특별하지 않으며, 아무도 평범하지 않다. 내가 너이고 넌 나이며, 우리는 나이고 너는 우리다.'

똑같다. 하지만 다르다? 개 짖는 소리다. 이 세상은 미쳤다. 개인이 가져야 할 특별함은 무시당한다. 부정당한다. 모난 돌은 깨지고 부수어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버린다. 세상은 말한다. 평범한 게 좋은 거다. 모두가 똑같은 세상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아무도 무시당하지 않고 그 누구도 우상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우상이 될 수 있고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의심하지 마라. 세상은 평화로워졌다. 부정하지 마라. 모두가 똑같아짐으로써 싸움은 없어졌다. 믿어라. 우리는 모두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긋지긋한 슬로건. TV에서 나오는 광고. 잡지에 쓰여있는 문구. 모두는 그렇게 세뇌되어가고 특별하지 않은 것이 특별한 것이라 여기며. 모두는 그렇게 생각하며 거리를 걸어간다. 속도를 맞추어 똑같은 걸음걸이로 똑같은 보폭으로 대열을 맞추고. 흐트러지지 않는 군중. 광장에는 모두가 똑같이 걸어나간다. 아무도 질서를 어기지 않고, 그럼으로써 존재하지 않는 법과, 그럼으로써 안전한 세상. 더 이상 범죄도 없다. 더 이상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도 없다. 더 이상 테러의 공포에 두려워할 일도 없다.

모두는 생각한다. 우리는 생각한다. '나들'은 생각한다. 난 특별해 하지만 특별하지 않아. 난 너와 달라. 하지만 넌 나야. 이 평등한 세상, 아무도 특별하지 않은 세상을 부수고 싶다. 하지만 이 안전함을- 이 평등함을 포기할 순 없다. 난 특별하며 평범하다. 그럼으로써 존재하는 나의 모든 평화. 안정감. 한 가지를 포기함으로써 한 가지를 얻는다. 테러도 없다. 공포도 없다. 슬픔도 없다. 행복도 없다. 즐거움도 없다.

평등한 세상. 아~아름다운 세상. 모두가 똑같은 아~아름다운 세상. 빌어 처먹을 아름다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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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

"사실 가장 간단한 행위죠, 안 그래요?"

그는 베실 베실 웃으며 그렇게 되물었다. 난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시선을 돌렸다.

"그래요 그거, 대답하기 어려운 상황, 혹은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 껄끄러운 상대, 그것들에 대해서 가장 간단한 행위를 지금 하셨네요, 도피. 예, 바로 그거요"

그는 신나 보였다. 손에 들고 있는 차키를 검지 손가락으로 빙빙-, 시선이 쫓아가질 못한다. 그는 내가 차키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채자 재빠르게 열쇠를 멈춰 손에 쥐었다. 그리고 내 눈 앞에 손을 뻗어 열쇠를 흔든다.

"두 가지의 선택이 있어요, 어떤 게 좋겠어요?"

그는 뻗었던 손을 거둬들여 열쇠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의 빨간 후드티가 흔들흔들, 아스팔트의 아지랑이처럼 흔들흔들거렸다. 난 빨리 결정할 필요를 느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원하는 걸 말해"

일을 치르는 동안 막혀있던 목구멍에선 쇠 긁는 소리가 나왔다. 목을 간질거리는 통에 기침을 몇 번 했다. 그는 그제야 마음에 드는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짓고 있던 미소가 인위적으로 느껴질 만큼. 그는 손가락 하나를 펴 앞으로 내민 채 입을 열었다.

"첫째. 돈이 있다면 돈을 더 낸다. 그럼 저는 아저씨를 안전하게 원하는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린다"

그는 손가락 두 개를 펼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둘째. 돈이 없으면 저건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요령껏 토막 내어 버리고 나를 따라온다. 단, 저걸 토막 내는 일에 나는 일체의 도움은 주지 않는다. 자~ 선택하시죠?"

나는 그가 가리키는 저것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덜 닫힌 골프 케이스에서 사람의 손이 하나 삐쭉 뻗어 나와있다. 내가 죽인 아내가. 나는 복잡해오는 머리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돈을 더 주지"

그는 피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요 그래-, 좋은 선택이에요. 도망가는 일은 전문가에 맡기셔야죠, 뭐~ 아저씨도 저걸 토막 내는 선택에선 도망치긴 하셨네요. 간단한 행위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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