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 그리고 에덴. 그 공간에서 아담과 이브를 제외하면 다른 모든 생명체는 필요 외의 존재인 것만 같았다. 완전무결한 존재와 같은-. 신의 사랑을 모두 받은 그들은 찬란하게 빛났고 아름다운 몸짓과 목소리로 얘기했다. 깨끗하디 깨끗한 생각들로 신이 자신들에게 내려준 은총을 찬미하였다. 그리고 뱀은 그들이 싫었다. 아니 정확히는 질투와 시기, 그리고 부러움. 뱀은 끊임없이 그들을 관찰했다. 벰은 그들과 같고 싶었다. 신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그들과 똑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그들과 똑같은 몸으로 그들과 같이 생각하고 움직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것들을 따라 하기로 결심했다.
뱀은 끊임없이 그들의 주위를 배회했다. 그들이 말하는걸 끊임없이 관찰했다. 그들이 말할 때 내는 목소리는 그 어느 동물이 내는 소리보다 감미로웠고 청량했다. 뱀은 밤새 그들의 울음소리를 따라 했다. 그러나 아무리 뱀이 열심히 그들의 목소리를 따라 해도, 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저 울음소리일 뿐 그것은 말이 되지 못했다. 뱀은 그들이 웃고 떠들고 노래하며 소곤소곤 거리는 그 모든 말들이 알고 싶었다. 그들과 같이 노래하고 그들과 같이 찬양하며 그들과 같이 신의 은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수많은 밤을 흘려보냈을 쯔음-. 뱀은 깨달았다. 난 앞으로 수많은 시간이 흘러도, 그들의 곁을 끊임없이 맴돌고 그들을 따라 하려 해도 절대 그들과 같을 수 없었다. 절대로!
신은 그들에게 아름다운 모든 것을 주었다. 매끄러운 머릿결과 흠 하나 없이 고운 피부, 온갖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목소리와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신을 찬양하며 춤출 수 있는 팔과 다리. 뱀은 절대 그들과 같을 수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이 하는 그 어떤 것도, 단 하나의 작은 몸짓도 뱀은 그들을 따라 할 수 없었다. 저들은 어째서 신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었을까. 왜 나에겐. 왜 나에겐 아무것도, 그 어떤 것도 주어지지 않은 것일까. 털 한오라기 없는 미끌 거리는 몸뚱이와 사그극 거리는 비늘, 두 갈래로 나누어진 혓바닥과 감기지 않는 눈. 아무리 소리를 내려해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팔다리 또한 없다.
어찌 보면 뱀은 그들과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였다. 그들이 온갖 아름다움의 표본이라면 뱀은 추악하고 소름 끼치는 것들의 표본이었다. 신은 어째서 저들에게만 사랑을 주는 것일까. 왜 나에겐. 뱀은 생각했다. 저들과 같아지고 싶다. 아담과 이브, 저들과 같은 존재이고 싶다. 아니, 아담과 이브. 그 자체이고 싶다.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 신을 향해 울부짖을 것이다. 그러나 뱀은 그들처럼 될 수 없었다. 그들이 받은 신의 과분한 애정이 뱀에게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뱀은 그들을 끌어내리기로 결정했다.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저 높은 은총이 가득한 땅이 아닌, 습하고 축축한 이 더러운 땅위에서 저 신을 향해 울부짖으리라. 신, 그 고귀한 입을 위하여 준비한 선악과를, 당신의 아들과 딸의 입에 물려주리라.
에덴이 아닌 이 더러운 땅 위에서. 아담과 이브와 동등한 위치에서 당신의 사랑을 갈구한다면, 당신을 향해 울부짖는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이 미천한 나에게도 사랑을 주실런지요.
끊임없이 솟구치는 활화산 같은 충동에 평생을 휘말리며 살아왔다. 혹시라도, 아주 혹시라도. 누군가 내 격정의 고통과 같은 충동에 휘말려 사는 자가 있다면, 그는 나의 절망과 비참함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삶을 유지시키는 것이라곤 몇 방울의 술과 메말라버린 빵 조각 몇 개. 저 어두침침한 구멍 속에서 더듬이를 흔들거리는 바퀴보다 못한 상황, 내 핏줄에 흐르는 더러운 욕정이 눈을 통해 번들거림을 느낀다. 아! 아아! 아아아! 이 충동을 이길 수 없음을 확신한다. 테베의 라이오스 왕은 알았을 것이다. 그 어린것의 순수한 눈망울에도, 미처 숨기지 못한 처절한 욕망의 충동을. 오이디푸스는 알리라 나의 고통을, 나의 충동을, 나의 욕정을!
아아~! 어찌할 수 없는 이 욕망의 충동은 끊임없이 타올라 날 집어삼킬 것이다. 죽음과 욕망 사이에서 날 메말라 죽게 하고야 말 것이다.
난 하루에도 몇 번이고 도망쳐 다녔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어버리고만 싶었다. 불과 같이 뻗쳐오는... 마음속을 천천히 침식시키는... 오늘도 방 안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방 안에서. 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얼굴을 파묻었다. 귓속에는 적막하다 못해 들려오는 이명이 나를 괴롭혔다. 일정한 것처럼, 또는 일정하지 않은 것처럼 그 삐-거리는 이명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간혹 그 이명은 다르게도 들려와서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게 너무나 소름 끼치게 들려와서 머리를 흔들고 귀를 틀어막지만 이명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은 참지 못하고 방구석에 있는 티브이를 켠다. 잠깐 눈을 괴롭히는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지만, 금세 익숙해진다. 아픈 눈을 비비고는 티브이의 볼륨 버튼을 찾아 소리를 키운다. 그러자 귀를 괴롭히던 이명은 억울하다는 듯이 자기도 따라 소리를 올렸다. 이명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할수록 그 이명은 더욱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제야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명이 들려주는 괴상한 말소리에- 굳이 따지자면 말이라기보단 단순한 의미, 느낌이라 해야겠지만... 이명에서 무언가를 전달받았다면 난 이미 미쳐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미친 게 맞을 거다. 아마도.
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천천히 방문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잡는다. 비틀어 당기자 오랫동안 닫혀있던 경첩이 끼익-거리는 소음을 만들어낸다. 이명에 섞여 더욱 기괴한 의미를 나에게 전달한다. 머리를 흔들어 이명을 날려 보내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에는 이명이 전달하는 의미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조용한 거실이 보인다. 내가 문을 열고 나온 일이 놀라운지 부모들이 나를 바라본다. 내가 그들을 노려보자 얼굴을 돌린다. 그래 알아 나도. 당신들이 날 싫어하는걸. 나는 그들에게서 눈을 돌리고 주방으로 향했다. 뒤에서 쏟아지는 눈길이 거북하다.
나조차도 얼마 만에 밖을 나왔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니까... 잠시 그렇게 생각하자, 주방 창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보였다. 시발. 밝네...
창에서 눈을 돌려 도마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식칼을 집어 들었다. 이쯤에 이르자 귓속에서 들려오던 이명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들려오던 소리들은 이명에 묻혀버리고, 머리 속에 울리는 이명 때문에 시야마저 어질어질했다. 비틀거리는 시야에 순식간에 어지러움이 엄습했다. 쿵-하는 느낌과 함께 벽에 몸을 부딪혔다. 그 상태 그대로 기대어 서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아직 그들은 나를 못 봤는지 일그러진 시야 속에서도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꼿꼿하게 앉아서-아니. 움직이는 건가... 잘 모르겠다. 이리저리 흔들린다. 걷고 있는 바닥이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가 쓱-사라진다. 이윽고 난 걸음을 계속 옮겨서 그들의 뒤에 섰다.
그때서야 그들은 다시 날 본 건지 놀란 얼굴로 쳐다본다. 일그러진 시야에 비친 일그러진 얼굴. 끔찍하리만치 이상해야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본래 이들의 원래 표정인 것처럼 자연스럽다. 일그러진 입이 열리며 붉은 혓바닥이 날름 거린다. 왠지 모를 뜨거운 입김이 뺨에 와 닿는 것만 같다. 손을 들어 뺨을 문지르곤 웃었다.
"미안- 안녕"
손을 그대로 휘둘러 목에 칼을 꽂아 넣는다. 이명은 더욱더 커지고- 얼굴에 튀어 오른 핏물은 사방으로 흘러내린다. 옆으로 도망치는 얼굴을 향해서 다시 칼을 휘두른다. 쓰윽-하고 무언가 잘리는 느낌이 들려온다. 다시금 몸을 움직여 확실히 목에 칼을 휘두른다. 핏물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이제야 삐-거리던 이명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내가 칼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몸에 칼을 꽂아 넣을수록 이명은 잦아들었다. 이윽고 이명이 사라지고 났을 때에는 내 주위는 붉게 얼룩져있었다.
하아...
"이제 살겠다..."
이제 이명이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