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초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죠. 당신에게 처음 말하는 겁니다. 왜냐구요? 글쎄요. 당신도 저와 똑같다는 느낌을 받아서랄까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뭔가 알 수 없이 친밀하게 느껴지고 동족, 혹은 동포라는 그 느낌. 알고 있죠? 뭐,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아아-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거기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세우라구요. 솔직히 말해봐요. 내 얘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죠?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앉아있는 상황이니까 별 수 없이 듣고 있는 거 알아요. 어떻게요? 하하하. 당신의 얼굴에 쓰여있어요. 심드렁한 그 표정. 척 봐도 알 수 있거든요. 표정이 잘 드러나는 타입인가 봐요- 아니면 말구요. 이렇게 날씨도 좋은 날에 우리 둘이 앉아서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햇살도 맞으면서-에이에이. 제 얘기 좀 들어보시래도요. 들어서 그렇게 재미없는 이야기는 아닐 테니까요.

좋아요- 허리 똑바로 피고.

옳~치. 자- 예? 제가 초능력자인걸 증명해보라구요? 하하하하- 그거야 어렵지 않죠. 전 진~짜 초능력 자니까요. 전 말이죠. 으흠- 사람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어요. 뭐 말 그대로 예측이긴 하지만요. 간단히 하나 보여드리죠. 지금 저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보이세요? 아니 아니- 그쪽 말고. 좀 더 오른쪽 파란 티를 입은 남자애요. 아아- 걔 맞아, 그래요. 옆구리에 끼고 있는 축구공 보이죠? 자- 저걸 이제 어떻게 할까요? 하하하- 뭐 가지고 가거나 그랬으면 제가 안 물어봤겠죠. 정확히 지금부터 10초 뒤에 공을 뒤로 던집니다. 아-진짜... 한번 봐바요. 5,4,3,2,1.

지금.

히히히 봤죠, 봤죠? 지금 딱 정확한 타이밍에 뒤로 던진 거? 아-거참. 믿으래도 그러네. 그럼 직접 한 명 골라봐요. 뭐? 저기 노란 티... 별거 없네요 그냥 가던 길 쭉 갈 거예요. 거 봐요-맞죠? 뭐? 저기 시폰 드레스 여자요? 넘어져요. 지금. 히히히히 맞죠? 봤죠? 그쵸? 전 진짜라니까요. 그래요 드디어 조금은 믿음이 생기나 보죠? 휴우- 힘드네요. 하하하하 이 능력을 어디에 쓰긴요. 뭐 생각해보니 딱히 쓸데가 없긴 하네요. 아 이봐요! 제 능력만 보고 가면 어떡합니까! 아이-진짜 가지 말라니까. 저기요 얘기 좀만 더- 그러니까! 아니, 할 말이 있다고...

하아-... 가버렸네.

5초 뒤에 차에 치일 텐데...

5

4

3

2

1

지금.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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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

"때론 침묵하는 게 더 상처가 되는 거야"

그 말은 싸늘하게 내뱉어졌다. 마치 그럴싸한 명언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분명 날 두고 하는 말이었다.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다른 누군가에게 더 이상 의지하지 않은 채-. 그리곤 한참을 우리는 서 있었다.

"평생 날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자다가도 문득, 밥을 먹다가도, 얘기를 할 때도, 생활 모든 곳곳에서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절대 잊혀지지 않게"

침을 삼켰다. 그녀는 자신의 숨이 거칠어지는 건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그녀의 파르라니 변한 핏기 없는 입술을 바라보았다. 예전 언젠가는 그녀의 입술도 붉디붉은색이었다. 생명이 다달아감에 따라 그녀의 입술도 생명을 빼앗기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날이든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고, 땅을 내려다봤을 때. 공기가 좋거나 나뭇잎이 유난히 파랗다거나. 꽃이 아름답게 피었거나 상쾌한 바람이 불어온다거나. 날 생각해야 해. 알았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가 대답하지 않는걸 탐탁지 않아했으나 난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져 갔다. 그녀의 말을 막아야 하지만, 내 눈앞이 흐려져 그럴 수 없었다. 그게 눈물이란 걸 손으로 닦아내고 나서야 알았다.

"비가 내리고 땅이 축축하고 여름철 더위로 찝찝해도, 겨울에 너무 추워 이빨이 딱딱거려도, 그때도 날 생각해야 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그녀는 만족하듯 눈을 감았다. 갈수록 거칠어져 가던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녀가 부탁했듯 난 그녀를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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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

그대 나에게 오라.

끊임없는 번뇌와 고통과 역경 속에서 그 모든 고통을 이고 나에게 오라.

고민이 있는 자는 그 고민을 멈출지 모른다. 고민은 그대를 집어삼키고 굴러 떨어지는 눈덩이처럼 몸을 키우고 키우고, 또 키워 모든 걸 파묻고 말 것이다.

고통이 있는 자는 하루가 어서 끝나기를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저 높이 떠 있는 태양을 어서 끌어내리려 애를 쓸 것이다. 이윽고 태양이 땅으로 떨어지고 난 뒤에야 달빛을 이불처럼 끌어안고 잠들려 할 것이다.

역경이 있는 자는 순탄치 않은 인생에 절망을 내뱉을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헤엄치지도 못한 채 숨만 간신히 쉬어댈 뿐일 것이다.

그대여, 그대 나에게 오라. 끊임없는 번뇌와 고통과 역경 속에서 그 모든 고통을 이기고 나에게 오라.

나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없으나, 모든 이에게 허락된 하나의 평등을 그대에게 주리니. 그대여, 그대 나에게 오라.

끝나지 않은 어둠 속에서 나 그대에게 축복인 안식을 주리니. 그대여, 이곳에서 안도하여 더 이상 힘든 일 없으리라. 그대여, 그대 나에게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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