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결과를 향해가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
난 저 말을 희대의 개소리라 칭하고 싶다. 세상은 승자의 결과다. 역사라는 것도 결국 승자의 입맛에 맞게 쓰인 게 아니던가! 제멋대로 찢어발기고 재조합하고 다시 부숴버리는 게 승자의 특권 아닌가? 그래서 다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깔아뭉개고 그들의 위에 서려는 것 아닌가? 그저 지기만 한 패배자들이 승자를 시기하여 만든 말이 아닌가 말이다!
승자를 욕하는 것도 결국 그들의 시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들이 올라가지 못한 자리에 대한 욕망으로 인한, 그들은 결국 자기 위에 있을 사람에게 굴복하여 아첨을 하겠지. 결국 승자란 그런 것이다. 패자들은 그저 한탄하고 욕을 하며 불만을 토로하는 종자들 아니던가. 힘을 얻기 위해 그들이 무엇을 한단 말인가!
남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힘, 그게 현실이다.
승자가 되기 위해 남들을 짓밟고 깔아뭉개는 것도 결국 능력이 아니겠냔 말이다. 패자들이 불만만 토로할 때 위로 올라갈 방법을 모색한 거 아닌가! 그렇게 해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게 그 어떤 더러운 방법일지라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날 욕하더라도 승자가 될 것이다. 그들의 머리 위에서 그들을 향해 침을 뱉을 수 있는 그런 승자가 될 것이다.
오래된 책을 꺼냈다. 언제 받았는지 언제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도 않는 그런 오래된 책. 갈색 표지 위로 하얀 먼지를 손으로 대충 털어냈다.
그제야 네가 준 책이란 게 생각났다.
책 안의 사진 한 장이 너와 나의 쓸데없는 미련처럼 남아있다.
무엇이든 꺼낼 수 있는 상자를 주웠습니다. 난 무엇을 꺼내야 할까 고민하다 상자에 손을 넣었습니다. 난 몇 달 전 목 메달아 죽은 엄마를 꺼냈습니다. 엄마는 비뚤어진 미소로 날 반겼습니다. 엄마, 우리 엄마.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빠는 기쁜 건지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어... 어...'하는 말을 하는 걸 보니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기쁜 걸까요? 엄마는 목을 메달기 전처럼 부엌으로 들어가 요리를 했습니다. 그날 그 저녁처럼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방 안을 채웠습니다.
아빠는 그날과는 다르게 밥을 드시지 않았습니다. 그저 옆에서 담배만 뻑-뻑-피울 뿐이었습니다. 엄마는 생선 살을 발라 내 밥 위에 올려주었습니다. 엄마는 아빠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아마 눈이 마주치면 때리던 아빠를 의식해서일 겁니다.
그 날 저녁은 푹 잠들었습니다.
일어나 보니 엄마가 또 매달려 있습니다. 풍경처럼 흔들흔들. 인형이 된 것 같습니다. 아빠는 내가 확인한 걸 보고는 주섬주섬 엄마를 끌어내렸습니다. 난 한숨을 쉬고 밖을 나섰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난 다시 무엇이든 꺼낼 수 있은 상자에서 엄마를 꺼내었습니다. 엄마는 다시 삐뚤어진 미소로 날 반겼습니다. 엄마의 손을 잡고 다시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빠는 박스에 죽은 엄마를 욱여넣다 우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표정을 보니 퍽이나 기쁜 모양입니다. 난 당황하는 아빠를 보고는 웃어버렸습니다.
이 날도 된장국을 먹고 잠이 들었습니다.
일어나 보니 또 엄마는 매달려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아빠도 같이 그 옆에 매달려 있습니다. 나는 흔들리는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웃고 말았습니다. 이제야 둘 다 죽어버렸습니다.
난 무엇이든 꺼낼 수 있는 상자에 갔습니다. 이번엔 우리 가족이 행복했던 그때의 엄마와 아빠를 꺼냈습니다. 둘은 환한 미소로 날 끌어안았습니다.
난 다시 무엇이든 꺼낼 수 있는 상자에 갔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또 죽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둘이 원한 건 내가 아니라 돈이었나 봅니다. 난 돈을 꺼내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 돈이면 우리 가족은 예전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