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평생을 바위처럼 웅크리고 살았다. 그저 조용한 아이로써 학창 시절을 보냈다. 졸업앨범을 펼쳐보았을 때 '이런 애가 있었나?'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는 지금에 와서야 '그때 좀 더 뛰어놀아도 됬었나 봐요'하는 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그는 그저 조용한 아이에서 조금 더 자라 내성적인 청년이 되었다. 한국의 남자라면 대다수의 남자가 그러하듯 그도 군대를 가야만 했다. 조용한 그는 선임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수시로 행해지는 폭언과 폭력은 그를 점점 옥죄어 왔다.

그러나 그는 잘 참아내었다. 속 마음을 숨기고 몸을 웅크린 채로 시간을 죽이고 마음을 죽이면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어차피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니까.

시간이 더욱 흘러 그는 군대를 전역하고 조그마한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돈을 번다는 건 사실 자신을 죽이는 것만 같아요' 그는 그런 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또한 '군대는 시간이 흐르면 전역이라도 하죠, 먹고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라는 말도 꺼내곤 했다.

그를 유난히도 괴롭히는 선배가 있었다. 그는 인터넷의 가십거리만 올라오는 그런 곳에 있을만한 사람이었다. 폭력과 폭언, 상습적인 절도와 성추행. 그는 더욱 웅크렸다.

마음을 죽이면 더욱 작게 웅크린다면 더욱 단단해진다면.

그렇다면 견뎌낼 수 있을 거야.

'견뎌낼 수 있을 줄 알았죠'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사건은 명료하리만치 간단했다. 선배는 언제나처럼 그에게 라면을 끓여오라 시켰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이어지는 폭언. '쓰레기 새끼, 물 양도 못 맞추는 병신 같은 새끼. 뒤져 이 새끼야' 뭐 그런 말들.

선배는 라면이 들어있던 냄비를 그에게 던졌다. 그는 뜨거운 국물이 머리 위로 쏟아졌음에도 하나도 아프지 않더란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선배의 눈에 찔러 넣었다.

'전 제가 참는다면, 바위처럼 그렇게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다면 안 아플 거라고 생각했었나 봐요.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으면서 말이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조금은 후련한듯한 그런 미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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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노을이 땅으로 꺼져갈 때쯤, 우연히 땅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붉은 태양이 점점 땅으로 사라지는 것과 반비례하듯, 그림자는 점점 자신의 몸을 길게 늘였다. 마치 자신이 여기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점점 몸을 길게 늘이던 그림자는 빛이 툭-하고 사라짐과 동시에 모습을 감추었다. 마치 거기 존재하던 게 거짓말인 신기루처럼.

존재하지 않게 된 그림자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눈에 보이진 않게 된 모든 게 신기루 같은 건 아닐 것이다. 떠나간 모든 이가 신기루가 아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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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치지직-.

"그리곤 추락했지요"

치지직-.

"아스팔트에 피가 퍼졌습니다. 깨지어진 머리가 여기저기 튕겨져 나가고"

치지직-.

"팔다리가 이리저리 꺾여 기괴한 형체가 되었습니다"

치지직-.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치지직-.

"꿈인 줄 알았습니다"

탁-. 녹음기를 껐다. 사내는 약이 덜 빠져나갔는지 몽롱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여자 친구를 밀어 죽였다는 걸 제대로 인지하고는 있을까. 아직도 꿈인 줄 아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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