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관계는 비탈길과 같았다. 넌 위에서 그저 관망하며 날 내려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너의 그 조그마한 관심과, 쓰레기를 버리는 듯한 무심한 감정의 표현들을 받기에 급급했다. 우리의 관계는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했기에.

난 끊임없이 너의 관심을 갈구했다. 그게 얼마나 처절한지 내 위에 있는 너의 발끝만 바라보며 한없이 애가 끓었다. 넌 귀찮아하며 짜증을 내며 그리고 조금씩 질려가며 나에게 던져주던 관심은 적어졌다. 내가 너에게 다가가려 비탈을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이윽고 너에게서 떨어진 조그마한 감정은 비탈길을 치달아 나에게 커다란 증오로 떨어져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너의 그런 감정이라도 나에겐 필요했다. 너와 나의 관계는 비탈길과 같았다. 밑으로 치달아 떨어질 것 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난 너에게서 떨어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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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

아버지는 꽁꽁 얼어버린 손을 모아 입김을 불었다. 하이얀 입김이 아스라지어 하늘로 흩어졌다. 차가운 물 때문에 두 손이 뻘겋게 변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날 보며 웃어 보였다. '물이 참 차다 그치?' 난 마루에 무릎을 글어모아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양말 두 켤래를 뭐가 그리 소중하다고. 하루 더 신어도 되는데 기어코 손빨래를 하는 아버지는 '아고 춥다 추워. 들어가 있어 감기 걸릴라' 하며 내 걱정을 하기 바빴다. 난 대답하지 않았다. 콧망울에 콧물이 맺혔다. 소매로 코끝을 훔치니 소매가 반들반들해졌다.

'다됐다!' 아버지는 당장이라도 얼어버릴 것만 같은 양말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아랫목 제일 뜨끈한 곳에 양말을 넣고는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힘들지?"

아버지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살다 보면 말이야 저 밤하늘처럼 어두울 때도 있고, 뼈를 파고드는 냉정하고 비정한 일도 있고, 네 양말처럼 더러워지는 경우도 있어"

아버지의 입김이 먼지처럼 하늘로 사라졌다.

"그래도 말이야. 저 밤하늘엔 반짝이는 별도 있고, 차가워진 손에도 입김처럼 따뜻한 온기를 불어줄 수도 있고, 더러운 양말도 깨끗하게 할 수 있으니까"

아버지는 말을 마치고 멋쩍게 웃고는 '감기 걸리니까 얼른 들어오렴'이라는 말을 하고는 방에 들어갔다. 난 잠시 그냥 앉아있었다. 어머니의 장례 후 아버지 나름대로 생각한 나를 위로하는 말일 거다. 사실은 자신이 더 힘들 텐데도. 아마 올해 겨울밤은 아버지와 나에게는 유난히도 추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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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그 태도가 싫은 거야 난"

우리의 싸움은 항상 이런 말로 끝나곤 했다. 넌 말없이 머리를 끌어올려 묶은 후 담배를 물었다. 빨간 립스틱과 담배연기가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보였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당당하게 담배를 꺼내 물던 너에게 반했던 게 떠올랐다. 붉은 입술 사이로 땅으로 가라앉듯 나오는 담배연기가 그렇게도 멋져 보였다.

"담배 끊기로 했잖아"

그렇지만 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넌 피식-웃어버리고는 바닥에 담배를 비벼 껐다. 얇고 긴 손가락, 검은 네일. 너에게 참 어울리는 손짓과 색이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싫어. 계속할 거야 네가 뭐라든"

"넌 나랑 한 약속은 하나도 지킬 생각이 없지?"

너의 입술이 비쭉거렸다. 넌 항상 불만이 있을 때 그런 표정을 지었다. 그게 평소의 당당한 너와는 너무나도 달라서 다른 매력처럼 느껴졌다. 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었지만.

"약속은 무슨... 너 혼자 말한 거잖아"

너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이제 말할 때도 됐지.

"처음엔 내가 담배 피우는 거 술 먹는 것도 다 좋다며? 이젠 다 싫은 거야? 왜 맨날 그렇게 잔소리만 하는데?"

아니 아직 좋아. 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만할래 이제"

넌 몸을 일으켰다. 난 말을 꺼내는 너의 붉은 입술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여전히 너의 붉은 입술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 그만하자 이제. 나도 지친다"

내 말에 넌 약간은 후련한 듯이 몸을 돌렸다. 네가 이제 나에게 질린 건 알고 있었다. 널 붙잡거나 나 자신을 다그쳐 너의 마음을 돌릴 용기는 나에게 없었다. 그저 미적지근한 태도로 네가 나에게 마음 쓰지 않게 보내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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