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73건

  1. 2018.07.12 너.
  2. 2018.07.12 가면.
  3. 2018.07.06 십 분.
  4. 2018.07.06 단골.
  5. 2018.07.06 선의.
  6. 2018.07.06 시옷.
  7. 2018.06.11 두려움.
  8. 2018.06.11 고양이.
  9. 2018.06.11 용서.
  10. 2018.06.11 아직도.

너와 단 둘이 앉아 얼굴을 마주 보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너의 목소리에 취해서. 카페에 단둘이 앉아, 가끔은 알아들을 수 없는 팝송을 흥얼거려보기도 하고, 때로는 달달한 노래가 마치 우리 노래인냥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웃고 싶다. 너의 숨결이 내 뺨에 와 닿고, 내 붉어진 뺨에 너의 입술이 닿고. 당황한 내 얼굴에 너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고. 가끔은 서로만 알아들을 수 있는 암호를 풀어내며, 다른 사람 몰래 사랑을 나누고 싶다. 아무런 것도 하지 않고 서로 눈을 맞추고, 음료수 하나에 빨대 두 개. 너 몰래 바람을 불어넣어 거품을 만들고. 너도 반달 눈웃음으로 거품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너와 있고 싶다.

달빛 부서지는 옥상에 앉아, 반짝이는 별들을 조명삼아. 꿈을 꾸는 달빛요정이 우리의 위에 내려앉고. 포근한 달빛을 이불 삼아 잠에 들고.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너와 잠들고 싶다. 창가에 아기 햇살 내려앉고, 짹짹거리는 참새 소리에 잠에서 깨고. 내 옆에 누워있는 너의 얼굴을 보며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부스스한 머리카락 쓸어내리고 발그레한 너의 뺨에 입맞춤하고, 너는 잠에서 깨어 입을 맞추고 싶다. 아침을 그렇게 너와 마주하고 싶다. 일어나기 싫어 앙탈 부리는 너를 끌어안고. 내 가슴에 안긴 너의 심장소리를 듣고. 두근거리는 소리에 다시 너와 나는 잠에 들고.

그렇게 하루를 너와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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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접니다. 혹은 '그것'은 당신일 수도. 또는 당신의 친구일 수도. 오늘 아침 인사했던 이웃집 아줌마 마일 수도. 학교 선생일지도. 또는 사람이 아닌 그 무엇일지도. 어쨌든 간에 '그것'은 모두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언제나 존재하며, 바로 '당신'일 수 있습니다.]

'그것', 이 세상에 만연하게 퍼져버린 명칭이 없는 무언가. 정확히는 어떤 존재인 줄 알고 어떤 일을 벌이는 줄 알지만, 사람들 모두 '그것'의 진실된 이름을 말하기 꺼리고 있었다. 자칫해서 말해버리면 자신도 '그것'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두 두려워하고 있었다. 모두 불안해하고 있었다. 자신의 가족이,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이 깔보았던 사람이! 모두 '그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원인? 그런 게 있을 리가. 아무도 밝혀내지 못한 비밀이었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나타나고,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그렇게 변해갔다. '그것'은 비극이었다! 모두들 언젠가는 내가 변하겠지. 그러면 제일 먼저 그 새끼를 죽여버리고, 그다음엔 이 새끼를. 그다음엔-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 가면이 '그것'이 되는 것이란 걸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

가면은 '그것'이었다.

박제일, 혹은 김현욱, 혹은 한영은. 또 혹은 제이슨, 카이야, 타마 조이. 모두 그의 이름이었다. 그-지금의 얼굴은 박제일-는 오늘도 골방에 처박혀 있었다. 제일은 '그것'들 사이에서 치면 혁명가, 혹은 철학가와 같은 존재였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제일 먼저 생각한 '그것'. 흡사 사람이 어째서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냐를 연구하듯 제일은 자신들, '그것들'을 연구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잠시 머리를 굴려 예전에 '자신의 얼굴이었던 것들'을 떠올렸다. 얼굴의 위치가 이리저리 바뀌며 멋대로 교체해나간다. 심지어 몸도 남자와 여자- 혹은 사람이 아닌 이상한 괴물 같은 형태로의 변경도 가능했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자신의 얼굴과 몸을 변형시키더니 어느 순간 뚝-. 방금 전까지 '박제일'이었던 그는 '카이야'라는 그녀가 되어있었다.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훑었다. 붉은빛의 금발. 초록색 눈동자, 살짝살짝 보이는 주근깨. 하이얀 피부, 봉긋한 가슴. 그 누가 보아도 매력적인 여성이다. 그녀는 잠시 그런 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내 모습이 아냐"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박제일의 얼굴로 돌아간다. 다시 그가 되어 버린 그녀는 방 한구석에 옷을 대충 걸치고는 밖으로 나선다. 이미 어두워진 하늘, 잔뜩 끼인 먹구름이 곧 비라도 내릴 것만 같다. 그는 주변의 사람들을 살핀다. '그것들'이 만연하게 퍼져버린 이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경계했다. 언제 자신을 먹어치울지 몰라 두려워한다. 자그마한 시비에도 서로 움츠러들고, 재빨리 제갈길 가기 바쁘다. 그는 무심코 옆을 살피다 자신의 동족을 발견했다. 자신의 동족인 '그것'은 사냥을 하기 위해서인지, 혹은 장난삼아인지 주변의 가녀린 여고생을 쳐다보고 있다. 간혹 먹잇감을 노리는 뱀처럼 혓바닥을 날름거린다. 아름답게 붉은 입술이 반짝 빛난다. 사냥을 준비 중이던 '그것'은 그를 발견하고는 인상을 찌푸린다. 마치 자신의 먹잇감이라는 냥 손을 들어 훠이훠이-손짓한다. 그는 가볍게 목례하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린다. 상관해봤자 좋을 것 없겠지. 다른 사냥감은 많으니까. 뭐- 아직 배도 고프지 않고. 하고 중얼거린다. 박제일은 그는, 싸움을 싫어했다. 특히 이유 없이 싸우는 그 모든 것들이 싫었다. 보통 호전적인 '그것'들과는 다른 성향을 가졌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나는 뭔가 달라. 나는 다른 '그것들'과는 달라. 속으로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왜! 그렇다면 왜 나만 다른가!

그것이 그, 박제일의 고민이었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누군가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내가 다른 '그것'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박제일이 다른 '그것'들과는 다른 점이었다.

"나는 다르다!"

조용히 소리 내어 말한다. 주변의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신경 쓰이지 않는다. 박제일은 꼬르륵 거리는 소리에 몸을 움직였다. 오늘도 무엇을 먹어야 했다. 살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몸 안쪽 그 구석에서 치밀어 오르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그것'들처럼 먹을걸 해결해줘야 했다. 오늘의 먹이는 그래- 저 아이로 하자. 그는 빨간 토끼 가방을 메고 걸어오는 아이를 뒤쫓았다. 얼굴을 바꾸자-, 어떤 얼굴이 의심을 덜 살까. 그는 얼굴을 바꾼다. 다시 박제일이었던 그는, 카이아인 그녀가 되었다가, 제일 순하게 생겼던 한영은으로 변했다. 조심스레 아이의 뒤를 밟는다. 사람이 없는 골목쯤에 도착하자-.

와그작-.

아이의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피가 현실감 없게 뿜어져 나온다. 옷을 벗기고-. 쇄골을 물어뜯는다. 빠그작-하는 소리와 함께 쇄골이 부서져 나온다. 약간은 딱딱한 이런 정도가 딱 좋다. 으그적으그 적 아이의 몸을 씹어먹는다. 발목을 입안에 집어넣고 다시 와그작와그작. 발가락 하나가 어금니에 낀다. '아씨- 발라먹을걸'하고 먹을 때는 생각도 안 했던 것들을 떠올린다. 손가락을 넣어 발가락을 뽑아 다시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목구멍을 타고 스르륵- 넘어간다. 꿀꺽-. 아- 배부르다.

타아앙-

급작스런 총소리와 함께 박제일의 머리 윗부분이 펑-하고 터져나간다. 몸이 기괴하게 꺾이며 땅에 고꾸라진다. 뇌 조각 몇 개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진다. 기하학적으로 흐트러진 시체의 파편-. 박제일의 몸이 꿈틀. 이미 죽어버렸음에도 살아있는 것처럼 기만하며 움직인다.

[사살 완료-. 사살 완료]

지지직-거리는 무전기 소리가 울려 퍼진다. 경찰관 한 명이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머리가 뚫려 죽어버린 박제일의 머리통을 걷어찬다. 입안에서 방금 밀어 넣었던 아이의 발가락 하나가 데굴데굴- 땅바닥을 구른다. 경찰관은 잠시 동안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다가 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어 입에 문다.

"미친 새끼-"

무전기에서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상관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됐어?]

[죽었습니다]

[그래]

그걸로 끝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다음날.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현장 사살'이라는 뉴스가 일면지에 뿌려진다.




--------그것의 뒷이야기.

"미친 새끼 좀 참지 그랬냐"

"한번 보십쇼. 참을 수 있나"

현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튕겼다. 붉은 불씨가 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며 땅에 떨어진다. 어젯밤 본 사건-. 몇 개월 전부터 쫓고 있던 그 사건이 드디어 끝났다. 늘어만가는 사이코패스, 그리고 그 범죄의 잔혹성. 이미 많이 보아왔고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볼 때마다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에 보였던 건 검은색 가발을 쓴 '박제일'의 모습이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연한 화장을 하고는, 짧은 치마까지 입고는 아마도 '아이'였던 발목을 씹어먹고 있었다. 온몸에 피 칠을 한 채로, 뺨과 가슴에 핏물이 흘러내린 채로. 현우는 무기력한 경찰관이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한 아이'의 가장이었다.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였다면. 현우는 지체 없이 방아쇠를 당겼었던 것이다.

조금만 참을걸-이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그 사건의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렇게 박제일이 죽어버리고, 방금 전까지 기나긴 회의의 시간을 거쳤다. 아마 징계겠지. 솔직히 징계면 괜찮겠지만- 아마도 잘릴 가능성이 크겠지. 그것도 아니면 큰집이라도 들어가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착잡하다. 빌어먹을 놈의 살인마 새끼를 쏴 죽여도, 법의 보호는 없었다. 오히려 사람을 죽여온 살인마 새끼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미친 세상. 나올 때쯤에 프로파일러에게 들었던 박제일의 심리상태를 간단하게 떠올린다.

[아마 박제일은 자신이 '박제일'이란걸 거부해왔던 모양이에요. 자신은 더욱 큰 존재. 혹은 지금의 자신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 또는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보다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겠죠. 아마도 '포식자'로써요. 그가 여태껏 해왔던 식인행위와 강간, 살인 행위는 모두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었을 거예요]

"씨발 미친놈..."

머릿속에 어젯밤 박제일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의 발가락을 입안에 밀어 넣던 그 모습이.

술이 당긴다. 술을 먹어도 취할 것 같진 않지만. 술을 마셔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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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사랑하기로 했다. 속죄다, 너를 향한. 많은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널 사랑하기로 했다. 많은 고민과 고통 속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아직 마음 깊숙한 곳에서 널 사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널 사랑하기로 했다. 마른걸레를 쥐어짜듯 있을 리 없는 감정을 억지로 이끌어 내려했다. 그때의 내 행동에 대해 후회한다. 그렇기에 너에게 사랑을 주려했다.

난 너를 사랑하기로 했다.

내 차에 치여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너를. 눈만 꿈뻑이며 날 노려보는 너를 난 사랑하기로 했다. 내 남은 인생 모든 걸 다 받쳐 널 사랑하기로 했다. 그게 너를 위해 하는 내 속죄가 되기를 바라며. 나를 노려보는 너의 독기 가득한 눈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단 십 분, 그 빌어먹을 십 분만 늦게 차를 몰았다면, 혹은 그 술집에서 단 십 분만이라도 늦게 나왔다면 너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 텐데.

빌어먹을 네 몸뚱이를 바라보며, 난 너를 사랑하기로 했다. 내 속죄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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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게에는 단골손님 한분이 계십니다. 음, 그분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게, 그 뭐냐. 의사들이 말하는 그 개인정보 보호? 뭐 그런 거에 걸리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쪽 생각을 한번 듣고 싶어서 말이지요. 하하 부담 안 가지셔도 됩니다. 네, 네. 뭐 굳이 답변을 원하는 건 아니니까.

손님이 보시기에도 우리 가게, 그냥 어디에나 있는 작은 오뎅바 아닙니까? 하하-, 주인이 이렇게 말하면 장사 마인드가 글러먹었단 얘기가 나오겠지만, 뭐 사실이니까요. 아, 간장은 저기에. 예, 이렇게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손님들의 면면은 참 다양합디다. 거 그런 말도 있잖아요, 장사꾼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하하. 아이고, 얘기가 잠깐 샜네요.

어찌 됐든 말입니다. 저기 보이십니까? 가게 왼쪽 구석, 기둥에 가릴랑말랑한 자리요. 예예, 거깁니다. 손님들 중에서는 이렇게 저와 얘기를 하기 좋은 자리를 선호하시는 분도 있는가 하면, 저런 기둥에 가리어져 혼자 술을 드시는 분들도 계시지요. 뭐 이런 사람은 한둘이 아니라 그런 분들이 오시면 저희도 딱히 말을 건다거나 친한 척한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 단골손님은 항상 저 자리에 앉으시지요. 뭐 저는 언제나 그렇듯 주문받고 술 내오고 그저 조용히 자리를 지킵니다. 굳이 혼자 드시러 오신 분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

그 손님은 항상 기름진 단발머리에 연분홍 원피스를 입고 혼자 오시곤 했습니다. 언제나 구석에서 소주 두병과 오뎅 두 개. 한 병에 오뎅 하나, 하하. 맞습니다, 거의 깡소주나 다름없지요. 그 손님은 그렇게 드시곤 항상 돈만 올려놓고 자리를 나갔지요. 예? 아 물론 저런 손님은 저희 입장에서야 깔끔하고 좋지요. 그런데 조금 특이한 일이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 밤 11시, 분홍 원피스에 며칠씩 감지 않은 것 같은 기름진 단발머리. 그걸 일 년이 넘게 지속합니다. 저와 같은 장사치들이야 소중한 단골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가끔 한 번씩 화요일에 머리를 깔끔히 감고 올 때가 있습니다. 그 날은 원피스도 분홍 원피스가 아닌 빨간 얼룩이 불규칙적으로 그려진 원피스를 입고 옵니다. 그치요, 그저 한 번씩 다른 옷을 입거나 머리를 감을 수도 있는 거지요. 당연히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그런데 혹시 손님께서는 월요일 밤의 연쇄살인마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아, 뉴스를 안 보시나요? 최근 이 곳 근처에서 지속적인 살인이 있습니다. 무서운 세상이지요, 이 얘길 왜 꺼내냐고요? 하하, 사실 전 그 단골손님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의심이고 그저 아무 증거 없는 추측에 불과할 뿐이지만, 뭐랄까요. 오랜 장사 끝에 얻어진 눈치 같은 거랄까요?

그 살인사건 말이죠, 항상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어린 소년의 목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주욱 그어서 피가 낭자한 상태로 말이죠. 그런데 그 단골손님 말이죠, 왼손잡이입니다. 예? 무슨 상관이긴요? 모르시겠습니까? 시체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목이 그었다고요. 물론 앞에서 했을 수도 있지만 뒤에서 본다면 말입니다, 왼손잡이일 거라고요. 예, 맞습니다. 제 의심일 뿐이죠.

그런데 말이죠, 그 살인사건이 있던 다음날이면 항상 그 손님은 머리를 감고 방문합니다. 기묘하게도 여지껏 사건이 있던 그 날들만 말이죠. 우연이라기엔 재밌지 않습니까? 억측이라도 말입니다.

제 생각은 이런 겁니다, 월요일 밤. 그녀는 피해자를 물색합니다. 어린 소년의 뒤로 접근하는 겁니다. 키가 작은 소년들은 그녀가 뒤에서 제압하기에 아주 쉬운 존재인 거죠. 그녀는 소년의 뒤에서 왼손에 든 칼로 목을 주욱-. 그래서 피해자들의 목 왼쪽 끝에서 덜 잘린 채로 죽어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피가 얼굴을 비롯해서 머리에도 덕지덕지 들러붙는 거죠. 예, 맞습니다. 그녀는 그래서 사건 후의 화요일엔 목욕을 하고 나타는 거죠.

옷이요? 글쎄요. 옷은 음~. 사실 그 빨간 얼룩은 피라고 할까. 글쎄요. 그걸 입고 나타나는 이유는 자기 과시욕이라 할까요? 하하-, 그러니까 단순한 제 추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오늘도 역시나 저기 오시네요, 그 단골손님. 음-, 어제도 사건이 있었나요? 빨간 얼룩 원피스군요. 어때요, 재미있는 이야기 아닙니까? 오뎅바에 오는 연쇄 살인마.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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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의 선의는 날 불편하게 하곤 했다.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깨닫곤 할 때마다 걷잡을 수 없는 불안을 몰고 오곤 했다. 검은 먹구름과 같은 불쾌감이 날 집어삼킬 때마다, 난 숨길 수 없는 비뚤어진 미소를 내뱉고는 했다. 나는 이 불쾌감에 대해 많은 날들을 고민해 왔다. 그들의 이유 없는, 목적 없는 선의는 언제나 반짝거렸다. 검은 그림자처럼 한없이 어둠에 스며져 있는 나에게조차 반짝거리는 선의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럴 때마다 드러나는 내 치부와도 같은 그림자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들과 나의 명암은 대비가 너무나도 극렬하여 다가가는 게 고통이 돼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내민 손에서 느껴지는 반짝이는 선의, 그리고 그 속에 스며있는 아주 조그마한, 나를 향한 연민. 그리고 그들 자신이 나와 같지 않다는 아주 조그마한 연민보다 더 작은 환희. 한번 눈에 들어온 이질감은 사라지지 않고 몸뚱이를 키웠다. 마치 암덩어리와 같이, 서서히 몸을 불리던 불쾌감은 이내, 그리고 이윽고. 나 자신을 뒤덮어 그들의 선의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극명한 불쾌감을 선사했다. 그건 아마 나 자신이 다른 이에게 선의를 표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자신의 추악한 자존감이 만들어낸 방어기제로써의 불쾌감일 것이다. 내가 못하는 일에 대한 일로써 불쾌감을 만들어내는. 아마 이것은 고치지 못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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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다 아픔을 알았다. 스무 살의 설렌 순간들은 운명의 장난처럼 순식간에 사랑을 앗아갔다. 서로 간의, 서로에게 향한 수많은 순간들이 일련에 사라지게 되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는 걸 직감했다. 손톱을 파고든 가시처럼, 살을 에는 겨울바람처럼, 긁혀 쓰라린 상처처럼. 사랑의 시발점에서부터 시작된 수많은 고통과 상처는, 순항하던 배를 좌초시키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이별했고 서로에게 쓰라린 상처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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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서 있다. 아무도 없다. 내 주위엔 조용한- 적막한 분위기만 흐른다. 나는 가만히 서 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보지 않는다. 아니-,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감았다. 주위는 금세 어두워졌다. 그제야 소리가 들려온다. 바람소리인가? 아니. 나는 눈을 뜬다. 잠시 잠깐 들려왔던 소리는 금세 사라진다. 손을 뻗는다. 아무것도 손에 걸리지 않는다. 나는 손을 움켜쥔다. 손 안의 무언가가 빠져나간다. 손을 펴 바라본다. 역시 아무것도 없다. 방금 느낀 것은 착각인가? 잠시 숨을 고른다. 다시 나는 혼자 서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 나는 앞으로 한 발 내딛는다. 무언가 퍼석-하는 메마른 소리가 들린다. 발 밑을 바라본다. 역시 발 밑에는 차가운 무기질의 바닥뿐, 아무것도 없다. 발을 들어서 살핀다. 나는 다시 발을 내려놓고 한발 내딛는다. 몸의 움직임이 거북스럽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만 같다. 아니 언제는 내 몸이었나. 나는 눈을 감으며 한 발을 내딛는다. 내 주위는 금세 고공의 외나무다리로 바뀐다. 당장이라도 삐그덕 거릴 것 같은 거북한 소리가 귀에 들린다. 온몸이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이 흔들거린다. 눈을 뜬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는 몸의 균형을 바로잡고 한발 내딛는다. 다시 눈을 감는다. 또 한 발을 내딛자 땅은 당장이라도 갈라질 듯이 쩍쩍 입을 벌린다. 나는 벌어진 틈을 피해 발을 내딛는다. 퍼서석- 하고 땅이 부서져 내린다. 나는 놀라서 얼른 눈을 뜨고 발을 옮긴다. 하지만 주변은 너무나도 멀쩡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난 후우-하고 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쿵쿵거린다. 적막하던 귀에 쿵쿵하는 심장소리가 들린다. 나는 혼자 있다. 눈을 뜨고 발을 앞으로 내딛는다. 주변이 우그러진다. 공기의 흐름에 따라- 혹은 내 망상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 이젠 눈을 감지 않아도 땅은 깊은 늪지가 되고, 공기는 탁해지며, 지나가는 바람이 손에 잡힌다. 이젠 눈을 감지 않아도 나는 움직일 수 없다. 한 발 내딛기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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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지나다 우연히 죽은 고양이를 보았다. 우연히 눈에 걸린 그 싸늘한 몸에 차마 가까이 가지도,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못한 채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렇게 머뭇머뭇 땅에 무겁게 이끌리는 다리를 억지로 잡아끌어 가까이 다가갔다. 아무렇게나 꺾이어진 다리, 움직이지 않는 몸. 이상하리만치 푸석해 보이는-혹은 기름져 보이는 털들 사이로 녀석은 날 노려보고 있었다.

또 한참을 머뭇거리다 주변의 나뭇가지 하나와 종이박스를 찾아들었다. 천천히 박스 위로 몸을 올린다. 혹여나 손에 닿을까 잔뜩 긴장한 채로. 갑자기 몸을 움직여 내 손을 쥘까 하는 공포감에 식은땀이 흐른다. 조심스레- 혹은 무서워하며 나는 녀석을 종이 박스에 올리었다.

때마침 힘 없이 떨구어진 녀석의 머리와, 그 틈으로 마주친 녀석의 눈에 화들짝 놀라 박스를 떨어트렸다. '왜 날 죽였어?'하고 묻는 것만 같다. 초점 잃은 눈으로 나를 책망한다. 눈을 피하기가 어렵다. 애써 침을 꿀꺽 삼키고 녀석의 눈이 보이지 않게 박스를 돌린다. 다시금 박스를 집어 들어 주변의 수풀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왜 날 죽였어, 왜 죽인 거야' 메아리치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외면하고, 우거진 수풀 아래 박스를 뒤집는다. 탁-하며 떨어진 녀석의 몸뚱이. 수풀 사이로 발 하나가 뻗어 나왔다. 난 재빨리 몸을 돌려 여기를 벗어난다. 무거워진 다리 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란 감정이 매달려온다.

그리고 그 뒤로 '왜 날 죽였어'하는 울음소리가 끌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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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lgo :

[내 소원을 정말 들으시는 거라면 한 번만 대답해주세요. 신, 그대에게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난 어릴 적부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신은 존재할까? 그것이 내가 가진 딱 한 가지 궁금증이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지요. 제가 당신이 존재한다고 믿게 된 건 무슨 사실, 혹은 종교에 의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전 단지 새로 생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그 본질인 당신을 인정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 궁금증은 당신이 존재해야만 성립하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신, 당신은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입니까?

그래요, 난 이 질문이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세상의 모든 인류를 딱 두 가지로 정의하게 했습니다. 자신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믿는 자는 어떤 사람이든지 포용하고 믿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이던지 배척하라.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과는 참 다르다고 느껴집니다. 당신이 정의해버리게 된 두 가지의 사람들은 사실 세부적으로 수 많이 갈리게 됩니다. 당신도 보고 있다면 알고 계시겠지요. 당신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의 악행을. 그리고 그들이 벌인 추잡한 짓거리들을. 물론,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압니다. 그렇기에 당신은 제 질문에 답해주셔야 합니다. 답해야만 합니다.

당신은 악행을 저지른 자신의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포용하는 겁니까? 살인을 저지르고, 강간을 하고, 폭행, 절도, 간음. 그런 것들도 당신을 믿기만 한다면 모두 용서가 되는 것입니까? 아니 용서가 되지 않더라도. 그들이 당신을 믿지 않는 착한 사람들과 같은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까? 당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그렇게 큰 죄악인 것입니까? 이것이 제 질문입니다. 제 궁금증입니다. 당신을 믿지 않던 제가 당신을 인정하게 된 이유입니다. 오로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하여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몇 번의 질문인지 몇십 번의 호소인지. 당신의 대답을 간절하게 기다립니다.

저는 제 질문에 대한 답을 들어야만 합니다. 전 당신을 믿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그의 방에 있던 편지의 전문입니다."

여성은 얼굴을 찌푸린 채 손에 들려있던 종이를 책상에 내려놨다. 커다란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던 남성은, 종이를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몇 년 전인가부터 시작된 그의 기행도 이 편지로써 끝이 나게 되었다.

이 편지의 주인은 죽었다. 남성은 종이를 다시금 여성을 향해 내밀었다.

"파일에 넣어놔"

"예"

여성은 손에 들린 파일에 종이를 끼워 넣고는 방문을 나섰다.

여성의 손에 들린 파일 안에는 편지의 주인으로 보이는 남성의 프로필이 적혀있었다.

강철웅 43세. 살인 및 강간, 납치.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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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다. 앞자리의 숫자가 두 번이 바뀔동안 나의 몸뚱이는 끊임없이 세포를 죽여가고 있었지만, 나의 정신은 어릴 적 그때를 답보하고 있다. 발전이 없는 정신상태는 나태하고 불안정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끊임없이 게으르기만을 추구하는 이 육신은 어느새 지방 덩어리의 괴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염없이 언젠간 변화될 거라는 거짓된 자기만족을 하며, 대기만성할 것이란 헛된 꿈을 마음에 품은 채. 와룡과 봉추와 같이 아직 내 재능이 꽃피울 곳을 찾지 못한 것이라 세상을 탓한다. 사실 마음속 불안은 슬슬 머리를 치켜들며, 언젠가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단 걸 알고 있다. 난 알고 있다. 그 불안이 튀어나와 날 집어삼킬 날이 온다면, 그런 날이 언젠가 온다면. 아직도 성장하지 못한 날 좌절로 밀어 넣을 것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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